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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

하나님, 팔팔한 청춘

by 한종호 2015. 1. 4.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2)

  하나님, 팔팔한 청춘

 

     * 나의 영혼은 그것이 창조되던 때만큼이나 젊습니다.

실로 나의 영혼은 그때보다 더 젊습니다.

나의 영혼이 오늘보다 내일 더 젊어진다고 해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교우에게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서른 한 살이에요.”

팔팔한 청춘이군.”

앞의 교우보다 조금 먼저 나온 교우에게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마흔 아홉이에요.”

팔팔한 청춘이군.”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항변 아닌 항변을 했다.

아이구 참, 이제 내년이면 쉰내가 날 텐데요. 그런데 목사님, 어떻게 서른둘하고 마흔아홉이 똑같이 그렇게 팔팔한 청춘일 수 있죠?”

내가 잠시 낄낄대다가 대꾸했다.

하나님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팔팔한 청춘이시거든! 그대들 안에 계신 하나님은 말이야!”

“.............”

     * 하나님은 덧붙임을 통해서가 아니라

덜어냄을 통해서만 영혼 안에서 발견됩니다.

 

나무들은 겨울이 다가오면 제 몸의 무게를 덜어냅니다. 이파리로 향하던 수분을 뿌리로 보내어 겨울나기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수분이 빠진 잎은 울긋불긋 물들어 떨어지고 맙니다. 물론 나무들이 지상에 노출된 가지에서 수분을 덜어내는 이유는 동사(凍死)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요.

나무들은 그렇게 제 몸의 것들을 덜어냄으로써 겨우살이를 대비할 뿐만 아니라 파릇파릇 잎새가 피어날 새 봄을 준비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운 순리(順理)지요. 나무들은 이 순리를 거스른 적이 없습니다. 덜어냄을 통해서 나무들이 새 생명의 날을 준비하듯이, 우리 인생에도 덜어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땅 위의 것들을 자꾸 덧붙임으로서 세속의 욕망을 채우려는 이는 그 영혼이 날로 앙상해질 뿐입니다. 욕망의 전차에 싣고 가는 지상의 양식으로는 영혼을 살찌울 수 없습니다. 인간은 덜어냄을 통해서만 자기 속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덜어냄, 즉 자발적인 금욕은 우리의 영적 성장을 돕습니다.

피둥피둥 살찐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처럼, 세속적 욕망의 무게를 줄이지 않고는 하늘을 나는 비상(飛翔)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 거장은 목재나 돌로 조상(彫像)을 만들 때

나무에다 상을 새겨 넣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상을 덮고 있는 껍질을 깎아 냅니다.

그는 목재에 아무 것도 보태지 않습니다.

다만 목재의 껍질을 벗겨내고,

옹두리를 떼어낼 뿐입니다. 그러면

그 속에 감추어진 것이 환히 빛납니다.

 

가을은 거추장스런 것들을 훌훌 벗겨내고 알몸이 드러나도록 하는 계절입니다. 하나님이 위대한 예술의 거장처럼 우리를 새롭게 빚으신다면, 아마도 먼저 우리의 알몸이 드러나도록 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사랑하시지만, 그것은 단지 피조물의 사랑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피조물 속에 깃든 신성의 사랑스러움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그것은 사람의 사랑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사람 속에 깃든 신성의 사랑스러움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술가의 손을 지니신 하나님은 그 신성의 사랑스러움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피조물을 덧씌운 껍질옹두리를 벗기시고 떼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사랑스러운 신성은 곧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화가 미켈란젤로가 어느 날 어느 화방 앞을 지나다가 그 앞에 버려져 있는 대리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화방 주인에게 그 버려진 돌을 얻어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쓸모없다고 버린 이 돌 속에서 나는 자기를 꺼내달라고 애원하는 천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가져간 돌로 그 돌 속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는 천사를 끄집어내었다고 합니다. 이 위대한 화가의 손에 맡겨진 돌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예술의 거장 하나님의 손길에 내맡겨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의 갈망이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그렇게 우리 자신을 그분에게 내어드릴 수만 있다면, 그분은 우리를 새롭게 빚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지 않겠습니까.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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