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268)
투명한 예수
공생애를 사시던 예수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제가 유심히 살펴보던 점은 모든 행함 중에 보이는 예수의 마음입니다. 모든 순간의 말과 행적을 놓치지 않으며 제 마음에 비추어 보는 일이 다름 아닌 성경 읽기와 사람 읽기, 마음 읽기가 됩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과 일은 어디까지나 마음의 일이니까요.
결혼식 축하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후 보이신 예수의 마음에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혈우병을 앓던 여인이 군중 사이를 지나던 예수의 옷자락을 잡고서 병이 나음을 보이시고도, 예수는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할 뿐입니다.
신약의 전문을 낱낱이 살펴보아도 이른바 종교인들이 내세우는, 예수가 행하신 이적과 기적 중에도, 예수는 언제나 자신의 공로와 의를 내세운 곳이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투명합니다. 예수의 허공처럼 투명한 그 마음을 대하고선 저는 그 앞에 그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와 닮은 마음이 있다면, 중도연기의 석가모니가 깨달아 보여준 본성이 허공처럼 투명합니다. 그리고 다석 류영모 선생님의 마음이 그처럼 투명한 허공을 닮았습니다. 법정 스님의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에서도 맑은 바람이 하늘을 스칩니다.
종교의 벽을 초월한 마음의 세계에서 본다면 예수와 석가모니의 마음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하나의 하늘, 하나의 허공입니다. 저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제 마음에 비친 예수와 석가모니의 마음이 투명한 것입니다. 학문과 종교 교리에 비추어 아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에 비추어 그냥 아는 것입니다. 학문과 종교 교리는 단지 이정표와 참고서로 삼을 뿐, 모든 현상과 삶과 사람과 마음을 바라보는 거울과 교과서와 중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 중심으로부터 평화와 사랑과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니까요.
예수의 마음에는 자기 자신의 것이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가끔은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을 때가 있습니다. 싱그러운 풀냄새를 풍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나무의 청정함을 닮은 사람을 스치기도 합니다.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살아가는 이들에게선 저절로 자연의 향기가 스며들 테고, 지극해지면 그 마음은 허공을 닮아서 모든 것을 안으면서도 그 어디에도 물들지 않을 테지요.
말씀과 행함 중에 보이신 예수의 마음을 보고 있으면, 예수는 사라지고 투명한 하늘만 보입니다. 가장 온전한 마음을 저는 예수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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