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평화의 밥상

by 한종호 2020. 11. 6.

신동숙의 글밭(270)


평화의 밥상



따끈한 무청 시래기 된장국 한 그릇, 김밥 반 줄, 유부 초밥 세 개, 깍두기 일곱쪽, 수도승들이 산책길에 주운 알밤 한 줌, 제주도 노란 귤 하나로 따뜻하고 맛있는 풍요로운 이 가을날 점심밥상의 축복을 받습니다.


아침부터 분주히 많은 양의 식사 준비를 하시던 누군가의 마음이 손길이, 먹는 이의 입으로 가슴으로 전해지는 거룩한 식사 시간은 그대로 고요한 감사의 기도 시간이 됩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앞마당엔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상이 보이고, 밥을 먹는 제 곁엔 사찰의 공양게송이 가까운, 이곳에선 하느님과 부처님이 사이좋은 이웃입니다. 


하나의 평등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이미 깊은 땅속에서 하나에 뿌리를 둔 하나라는 사실을 문득 해처럼 떠올리다 보면 어둡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종교의 벽을 초월한 이곳 평화의 땅, 평화의 집에서 먹는 음식은 몸에는 약이 되고 마음엔 기쁨이 됩니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공양게송 한 줄을 꼭꼭 씹어 가슴으로 새깁니다. 또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서 이렇게 공양게송을 한 줄 한 줄 가슴으로 새기다 보면, 이대로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공양게송을 다 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마 돌아서서 금새 잊어버린다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이 다음에도 이곳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또 새롭게 가슴으로 새기면 되니까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산책을 하듯, 말의 뜻을 가슴으로 새기는 일이란 매 순간을 깨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잠자던 가슴으로 말씀의 새숨을 불어넣어 몸을 일으켜 세우는, 매 순간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생명의 활동입니다.


이 화창한 가을날 멈추어 하늘의 평화가 머무는 이곳은 평화의 땅이 되고, 미리 맛보는 천국이 됩니다. 밥 한 끼를 먹어도 이렇게 마음 편안한 곳에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겐 커다란 선물이자 축복입니다. 


오늘도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그 어느 곳에 있든지 저마다 마음이 편안한 평화의 밥상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