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 리영희 선생의 <대화> -
시대의 의로운 길잡이
오늘은 엄혹한 시절, 불의가 판을 치고 거짓이 난무할 때 그러한 권력에 맞서 자유와 진실을 추구한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10주기이다. 한 시대를 사상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본인에게 있어서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영광이 무수한 고초와 핍박 그리고 고난이 전제된 것이라면 아무나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그 격동의 시기에, 진실에 대한 깊은 갈구를 해온 세대에게 마치 샘물처럼 솟아오른 존재였다. 그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는 냉전 의식으로 눈이 가려진 시대를 뚫고 진실의 정체를 보여준 위력적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 세대를 길러낸 ‘사상의 은사’ 또는 ‘시대의 교사’라는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사상의 은사
이보다 더 이상의 기쁨은 없다. 그가 낳은 사상의 자식들이 이제 이 사회 곳곳에서 일전의 지휘관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영희 학교’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분야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계, 학계, 문화계, 시민운동 등 그의 지적 파장이 도달하지 않은 곳이 없다.
리영희 선생의 자서전 격인 『대화』는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대화자로 등장해서 리영희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개인이 하나로 엉켜 이루어내는 일대 드라마를 장쾌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그리하여, 리영희라는 개인에 대한 이해와 지식만이 아니라 그가 마주했던 시대의 의미까지 파악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오늘은 어떤 지점에 와 있는지를 성찰하도록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자서전 『대화』는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세대만이 아니라,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절실한 일독을 권하게 되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그와 같은 시점과 현장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했을지 돌아보게 된다. 그건 역사의 중심에 서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교육이자 훈련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하여, 이 시대에 『대화』를 읽지 않는다면 그는 ‘대화’에 끼일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지난 시대가 겪어온 고통과 우여곡절, 거기에서 탄생한 역사에 대한 열정과 의로운 힘들의 집결, 이를 주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늘의 시간을 내용 없이 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빛나는 어리석음”과 “진솔하고도 뜨거운 육성”
첫 장을 펴는 순간 독자들은 아마도 근 8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리영희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구어체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이다. 한 의지가 바른 지식인의 삶의 기록이다. 그 기록이 열어가는 길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참으로 줄기차게도 그리고 고집스럽게도 자신의 뜻에 충실해온 지식인의 “빛나는 어리석음”과 “진솔하고도 뜨거운 육성”을 만나게 된다.
리영희가 『전환시대의 논리』를 내놓았을 때, 세상은 여전히 중세였다. 권력의 신학이 지배하고 사상의 종교재판이 당연시되었다. 언론은 세상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왜곡해서 보여주는 임무가 본연의 역할인 듯했던 때였다. 바로 그 시점에서 리영희는 권력자, 기득권 세력에게 악역을 맡은 자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세대에게는 “복음의 전령자”가 된다.
베트남을 위해 한국군이 파병되었다는 월남전의 진상이 무엇인지, 권력과 언론의 관계가 도대체 어때야 하는지, 그리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전략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일체의 서술은 그때까지 진리라고 여겨졌던 상식에 일대 타격을 가했다. 그것은 단지 주장이 아니었고, 명확한 논거와 입증 그리고 논박하기 어려운 논리로 무장된, 거짓에 대한 철저한 해부였다. 당대의 젊은이들은 놀라움에 휩싸였고 권력자들은 분노했다.
세계는 전환의 고비를 맞고 있는데, 이 땅은 옛 질서의 철옹성 속에서 흘러간 노래를 군가처럼 부르게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책을 읽은 젊은이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건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나 도는 행렬을 닮아 있었다. 냉전의 성채야 무너져라, 반공의 무덤은 사라져라, 권력의 기만은 이제 끝이다, 라는 외침이 그 안에서 솟구쳐 나왔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권력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리영희는 여차하면 수인(囚人)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은 더더욱 빛났고 그의 명성은 이 시대의 영혼 깊숙이 뿌리내렸다. 권력은 강했지만 악했고, 힘 있는 듯 했지만 역사의 정의 앞에서 점점 무력해져 갔다. 리영희는 그러면서 살아있는 신화가 되어 갔고 ‘리영희 학교’는 날로 번성해져 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그의 책 『우상과 이성』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그는 마치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를 연상하게 하는 자세로 거짓과 우상의 기만을 쳐부수었다. 온 시대가 우상의 속임수에 끌려가고 진실과 멀어지는 것을 못 견뎌 했다. 그리고 참지 못한 채, 그의 손에 들린 펜을 이 시대의 우상을 파괴하는 망치로 사용했으며 그로써 사상의 해방구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리영희는 ‘사상적 자폐증’은 곧 자살에 이르는 길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화적 편협성은 우리 남한 사회가 해방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광적인 반공주의와 극우 폐쇄사상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문명적, 문화적 후퇴를 겪어야 했던가 하는 사회 경험의 본보기가 되지요. 공산주의 국가들도 지식, 사상, 문물의 차원에서 마찬가지였지. 사상적 자폐증은 곧 자살이요. 공산주의나 반공주의나 다 ‘자살주의’임에는 다름이 없어요.”
그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언론의 거짓 선전이 난무할 때, 온갖 자료를 통해서 진실의 면모를 파헤친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미국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의 자서전 『대화』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베트남 전쟁 끝에 하나의 확고한 의견을 갖게 됩니다. 미국 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잔인무도할 수밖에 없다, 약소민족에 대한 전쟁 없이는 그 제국주의적 경제, 정치, 군사, 과학기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확신이예요. 베트남 전쟁이 그 노골적인 본보기이지만, 이미 그때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10여개 약소국을 잇달아 군사적으로 침범, 점령했고 약소 후진국들이 조금이라도 민주적 복지와 자립적 경제정의를 추구하려고 하면 그런 정권들은 미국이 뒷받침하는 반동적이며 미국에 예속된 군부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켜서 전복시켜 왔어요.”
미국의 허상을 이렇게 짚은 그는 그 허상의 파악을 넘어서서 미국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범죄를 폭로하고 이에 속지 않도록 경계한다. 미국과 관련한 사상적, 정치적, 역사적 우상을 일거에 깨어버린 것이다.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그런데 책 『대화』는 그의 지적 형성사만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겪은 인간적 고초와 고뇌가 가감 없이 서술되어 있다. 그가 한때 신문사에서 쫓겨나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 어느날 집에 누워 있는데, 옆에서 놀던 소학교 1학년의 큰놈이, 아버지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동생 미정이에게 말하더군.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이 없을 것 같아’라고 하니까, 동생이 ‘왜 없어?’ 하고 물어요. ‘아버지가 실업자래. 돈을 못 번대’ 하더군요.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참 가슴이 아팠어요. 몇 푼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어서 그 길로 이병주를 찾아갔지요. 마침 그때 그이가 중편소설 『소설 알렉산드리아』(1965)와 『마술사』(1968) 등 몇 권을 쓴 뒤라 그걸 출판하려고 스스로 아폴로라는 출판사를 냈어요. 결국 내가 그 책 외판을 한 거야. 새끼로 묶어서 들고 다녔어요.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들에게 안기고 월급날에 값을 받아오고 했지요. 그래서 서울의 웬만한 남녀 중학교는 어디 있는지 다 알아요. 제일 고약했던 것이 한성여중이었어. 언덕 위에 있는데 어찌나 가파른지. 거기에다가 눈까지 쌓여 미끄러운 길을 레닌의 말대로 일보 전진 이보 후퇴로 오르는데 그 짓을 엄동설한 내내 했어요… 그 뒤 이병주가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7분짜리 칼럼을 했는데, 그 양반이 자기는 술 먹고 여성사업 하느라고 바쁘다며 나보고 대신 쓰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대신 썼는데, 원고료가 적지 않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1년 남짓을 몇 푼씩 벌어가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어.
무척 춥던 겨울 어느 날, 오버를 입고 양쪽 손을 각각 이병주 소설을 열 권씩 새끼로 묶은 책 뭉치를 들고 이화여고 국어 선생들을 찾아가느라고 덕수궁 길을 걷고 있었어. 눈이 얼어서 미끄러운 길에서 간신히 발길을 옮기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갑자기 이 부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어. 보니까 법조계 출신인 합동 통신사의 젊은 기자더라구, 그는 나의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의아스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보더군. 그의 뜻을 알아차린 내가 출판사를 차렸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직 사람을 두지 못해서 직접 책을 배달하고 있다고, 진실 반 거짓 반으로 적당히 얼버무렸어.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합동 통신사에서 외신부장으로 와달라는 연락이 있었어요… 그것이 1969년 겨울의 일이었지.”
한 위대한 지식인이 감옥에 갇힌 일만이 아니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는 과정을 그는 담담하게 토로한다. 그렇게 그는 우여곡절을 통과하면서 진실의 필봉을 놓지 않았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는 더욱 단단해졌고, 더욱 내공이 달라진 존재로 변화해온 것이다.
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최대한 강화하는 자들이 민낮을 드러내고 온갖 거짓과 진실을 뒤섞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언론 권력이 기세등등한 혼란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고 끝까지 지조를 변치 않고 참 언론인으로 아무리 때가 어둡다 해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 주어 시대의 의로운 길잡이가 되어 온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이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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