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비텐베르크, 2020년 10월 서울
비텐베르크
‘흑곰’ 호텔의 아침 식사용 식당에서 곰이 으르렁거린다. 벨기에의 관광객 한 그룹이 뷔페 식당으로 들어왔다. 함부르크에서 온 운동복 차림의 부부는 엘베 강변의 자전거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서둘렀다. 네덜란드에서 온 한 교회의 교인들은 먼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언한다. 도시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대부분 마르틴 루터를 보기 위해서다.
비텐베르크의 슐로스키르헤(Schlosskirche)교회는 온통 다가오는 만성절(할로윈데이) 준비에 여념이 없다. 수많은 성인들의 유적이 제단 위에 흩어져 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한 조각, 저기에는 피 한 방울 혹은 순교자들의 뼈.
루터는 요새화된 탑의 고요한 골방에서 통찰을 얻는다. 인간은 업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이 사상은 개신교회에 해방의 복음이 되었다. 신생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 마르틴 루터가 그의 95개조 명제를 성안의 교회 북문에 쇠망치로 못을 박아 걸었을 때, 순례자들과 쿠어작센 군주의 수도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확증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수 없다.”
“연보궤에 동전이 ‘쨍그랑’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교리를 설교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처럼 당시 가톨릭 교회가 자행하던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교황권에 의문을 제기하는 95개 항목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95개조는 활발한 면죄부 거래와 천박한 경건에 대항한 개혁의 깃발이었다.
‘95개조 반박문’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인쇄술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 전파되었다. 루터의 행동에 대해 교황은 처음에 ‘술 취한 독일인의 주정’ 정도로 치부했으나 사태가 확산되자 강경 대응하기로 결정한다.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에게 내린 파문 교서는 루터를 비하하는 인신공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일어나소서, 오 주여! 당신의 소송사건을 심판하소서. 멧돼지 한 마리가 당신의 포도원에 침입하였나이다.” 파문 교서를 받은 저돌적인 멧돼지 루터는 보기 좋게 이를 불태워버렸다.
2020년 10월, 서울
서울 광화문 광장이 난리도 아니었다. 성조기의 물결과 함께 기도 소리와 찬송, 그리고 목사들의 외침은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치고 있었고 남자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종교집회인지 아니면 정치집회인지 또는 외국의 명절이나 국경일을 위한 모임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성조기와 십자가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여자들의 울음 섞인 기도와 남자들의 분에 찬 아우성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단에 오른 한 목사는 강한 톤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완전히 빨갱이 천지가 되고 있어요.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청와대에는 빨갱이가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뿐인 줄 압니까? 언론, 방송, 말할 것도 없이 죄다 빨갱이가 접수했어요. 이러다가 이 나라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 나라 정부, 문재인이가 다 말아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예언자적 사명을 가지고 이 나라가 직면한 위험을 알려야 합니다. 절망에 빠진 이 나라가 교회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보세요, 오늘 이렇게 많이 모일 줄이야. 아마도 저 빨갱이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아멘 소리가 도처에서 우렁차게 쏟아져 나왔다. 그 아멘 소리가 매우 위협적이라고 예수는 느꼈다. 아멘 소리에 핏발이 서 있었다. 전투를 준비하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들이 적으로 삼는 이들은 누구인가? 십자군 전쟁을 하려는 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예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 저 성조기가 십자군 깃발인가 싶었다. 연단의 목사는 계속 자신의 말을 자기도취적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교회가 이런 때에 침묵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구국의 대열에 나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저 바알을 따르는 자들이 이 나라를 사탄에 바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정보에 훤하게 밝은,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말씀해주시기를, 김정은이 보내고 훈련시킨 자들이 지금 이 어지러운 때를 이용하여 김정은이가 명령을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고 난 목사는 그러니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려는 자들은 모두 빨갱이에다가 김정은이 부대라고 힘주어 말한 후, 지리한 기도를 시작했다. 예수는 하도 지겨워져서 자리를 떠나려 하다가 어느 나이 든 목사가 뒤이어 연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하였다. 저이는 좀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하려나, 예수는 새로이 등단한 노년의 목사를 주시했다. 매우 묵직하고 다소 쉰 음성이었다.
“아, 이 나라가 참으로 통탄할 지경에 처해 있어요. 모두 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깊이 회개하고 믿음대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아직 뭐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늙은 목사의 음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보세요, 이 성조기의 아름다움을! 보세요, 이 성조기의 물결을! 미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이 지상에서 최고로 축복하신 나라 아닙니까? 누가 그 나라를 당해냅니까? 저 이라크의 후세인 꼴 좀 보세요. 온갖 행패를 부리다가 그만 지금은 저렇게 초라한 몰골이 되지 않았습니까? 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지 그대로 증명한 사태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도구가 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미국은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는 이 대목에서 기가 막혔다. 본질은 하나님이 누구의 편에 서 계신가 하는 것인데 말이다. 자신들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서 이처럼 온갖 폭력을 휘두른다는 말인가? 목사의 말은 이어졌다.
“6·25 때 우리가 누구 덕분에 살아났습니까? 저 남쪽 한 뼘 남은 땅 말고 다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미국이 천사처럼 나타나서 우리가 이렇게 오늘날 그런대로 살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저 철모르는 자들이 날뛰면서 반미 하고 있습니다. 보세요, 그러니까 미국이 미군 빼간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제 바지가랑이 붙잡아도 기분이 영 잡쳐서 그냥 가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 안보 불안, 누구 짓입니까? 바로 저 빨갱이들 때문이 아닙니까?”
성조기가 한껏 흔들리고 있었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감격한 표정으로 성조기를 하늘 높이 들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러분, 우리의 이 믿음을 또한 누가 전해주었습니까? 바로 미국 아닙니까? 그 미국을 대적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배반하는 것이에요. 그런데도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저 빨갱이 무리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올 것이 무엇입니까? 뻔하잖아요? 김정일이가 인민군을 앞세워 남침하는 것 아닙니까? 불바다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미군 나가게 하고 그 틈에 서울을 제 것으로 만들겠다는 거죠. 이거 우리 그대로 눈뜨고 당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아니오” 하고 합창했다. 갑자기 분기탱천하는 모습들이었다. 차마 입에 담지 말아야 말을 쏟아내고 있는 목사의 말은 가관이었다.
“000이가 죽으니깐요, 국민들의 얼굴 색깔이 달라졌어요. (아멘) 국민들이 훤해졌어요, 훤해졌어요. (아멘) 앞으로 몇 명만 더 죽으면 아마, 하하하. ‘주여, 000 절대로 자살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감방만 갔다가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하하. 000 너 눈에 만만하게 보이냐? 교회가? 그러면 너도 000 같이 돼버려.”
목사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하는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저 사탄의 무리들에게 불 심판을 내리소서. 미국을 축복하여주시고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 주사파들을 몰아내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소리에 지축이 울리는 듯하였다.
예수는 너무나 슬펐다.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이 부끄러웠고, 게다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이러한 주장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통탄할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예수는 10월 마지막 주가 종교개혁주일인 것을 떠올렸다. 그의 시야에는 저 500년 전 독일의 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개혁의 신호탄은 쏘아 올려졌으나 이 나라의 교회는 개혁의 포장만 하고 있을 뿐 내용은 수구 보수였던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이 땅에 오면 과연 무엇이라고 할까? 예수는 심히 착잡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예수의 마음은 50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에는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마르틴 루터가 교황 레오 10세를 대상으로 하여 당시 가톨릭 교회를 정면으로 치고 나오는 중대한 선언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저 유명한 ‘95조항’이다. 당시 로마 교회는 찌들 대로 찌들어 있었다. 그곳은 이미 신앙의 성지가 아니라 장사하는 자들의 집단이 되어가고 있었고 권력투쟁에 몰두한 자들의 서식처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르틴 루터는 1510년 로마를 여행하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깊은 실망과 회의를 느꼈다. 그의 머리와 가슴에는, 아 이것은 아닌데 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자라면서 그는 점차 로마 교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자가 되어갔는데, 애초에 그는 로마 교회 안에서의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나 그러한 믿음은 그의 이상론에 불과했음을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그는 교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동으로 가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파문이라는 직격탄을 맞지만 루터는 더 이상 교황과 가톨릭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서서 개혁의 기치를 올린 것이다.
그의 주장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교회는 성서로 돌아가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라는 것이었다. 교회가 하나님을 내세워 권력의 성채로 변질된 것에 대한 격렬한 투쟁이었다. 예수의 상념이 여기까지 미치면서 그는 당시 루터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주는 글을 하나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루터는 더 이상 로마가 아닌 당시 황제 카를 5세에게 자신의 입장과 주장하는 바를 알리고, 그의 도움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이해시키는 동시에 그의 동의를 구하려 하였다. 물론 여기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뻔했던 선제후 현인 프리드리히(Friedrich der Weise)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청과 취소를 거듭한 우여곡절 끝에 결국 카를 5세는 루터를 1521년 4월 17일 보름스 의회에 초청한다. 그곳에서 루터는 자신의 입장을 해명할 수 있는 발언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독일인이었던 루터는 당시 제국헌법에 있던 “독일인은 그 직위를 막론하고 독일 밖에서 심문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에 따라 로마가 아닌 독일, 그것도 보름스에서 재판 아닌 재판을 받았다.
4월 16일 도착한 루터는 다음날인 4월 17일 제국의회 앞에 선다. 그곳에서 루터는 가톨릭 황제들의 대를 이은,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부르군드, 스페인 그리고 나폴리의 주인이던 황제 카알 5세 앞에 섰다. 그에 비하면 루터는 자신의 믿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보잘것없는 한 수도사였던 것이다.
루터는 17일과 18일 황제와 선제후 그리고 다른 여러 제후들 앞에서, 그리고 23-24일의 의회 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세 번에 걸쳐 심문을 받고 변호를 한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심문하는 심문자(Johann Eck von Trier)와 그곳에 참석한 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고 단호하게 알리게 된다.
4월 17일 첫 날의 심문에서, 에크는 루터가 쓴 책들을 모아놓고 루터에게 그것들이 모두 루터 자신의 책인지를 묻는다. 루터는 그것을 인정한다. 두 번째로 그것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지를 물었다. 여기에서 루터는 당시의 황제 앞에서 무모할 정도로 당당하게 황제에게 생각 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을 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앞에서 한 수도사가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다행히 카를 5세는 그에게 하루의 여유를 주었다. 그뿐 아니라 다음 날 계속된 심문에서 루터는 자신의 변호를 먼저는 독일어로 다음에는 라틴어로 행하였는데, 황제인 카를 5세가 독일어를 하지 못하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는 황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루터에게는 세속의 황제보다도 더 두려운 분이 있었기에 이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심문은 그대로 기록되어져서 인쇄물로 나왔는데, 첫 인쇄물에 루터의 마지막 말, “나는 여기에 확고부동하게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 Gott helfe mir! Amen.)이라는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루터는 로마의 거대한 교회 앞에서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다. 일개 수도사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장대한 권세와 맞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 이것 하나였다.
그리하여 마르틴 루터는 “나는 여기에 확고부동하게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라고 했던 것이 아닌가? 그에게 의지처가 있었다면 오직 하나, 하나님뿐이었고, 그로써 그는 현실의 교회 권력을 변화시키는 개혁의 놀라운 힘을 뿜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명제>
그 마르틴 루터가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예수는 루터가 보게 될 것은 그가 로마에서 보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대한 성채가 된 교회, 그리고 현세의 축복을 모두 독점하려는 탐욕, 거기에 덧붙여 성서가 아닌 자신들의 주장을 신앙으로, 교리로 만들고 있는 신성모독의 죄를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이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주일에 무엇을 기념하게 될까? 다만 루터의 이름을 따라 개혁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일 뿐이지 않을까? 더욱이 이들이 주장하는 북한에게 나라를 통채로 넘긴다는 가짜 뉴스와 빨갱이 운운, 미국에 대한 찬양과 숭배에 가까운 옹호란 결국 그들의 숨겨진 탐욕과 기득권을 지켜내려는 것 아닌가? 아,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내세워 자신들의 속셈을 채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 예수는 두려웠다. 그 심판의 결과가 실로 무섭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그 옛날,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던 말을 떠올리면서 지금 그 초라한 나사렛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무장한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라는 탄식소리를 듣는다. 개혁의 걸림돌로 교회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수구적 기득권의 대변자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오늘 한국교회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 예수는 역사의 과거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와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개혁 과제를 안고 있는 교회가 어느새 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되어 서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저자거리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자신이 오래 전 갈릴리를 주유하면서 일깨웠던 사랑과 정의, 그리고 예언자적 사명은 이들 교회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아, 이들은 실로 깨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들의 권력과 탐욕을 신앙으로 포장하고 강대국에 대한 자신들의 굴종을 교리로 치장하여 뭇신도들을 속이는 것은 무엇으로 심판되어야 하는가?
예수는 10월의 가을 하늘을 보면서, 교회는 저렇게 맑아야 하는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둠이 깊지만, 그것은 결국 새벽이 곧 올 것이라는 징조가 아니겠는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개혁, 그것을 위한 성령의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도 모르게 불어올 것이다, 예수는 그렇게 마음에서 외쳐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이 이슥해진 골목길을 지나 산등성이의 작은 교회당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 교회의 문 앞에는 “교회가 미안합니다”라는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종호의 '너른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0) | 2020.12.05 |
---|---|
전도서 기자는(3) (0) | 2020.10.25 |
2020년, 파란만장한 역사의 점철 그리고 성서의 시선 (0) | 2020.05.20 |
유승준의 ‘말바꾸기’와 차인표의 ‘당당함’ (0) | 2019.07.16 |
민족사와 함께 한 ‘떠돌이 신학자’의 생애 (1) | 2019.03.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