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82)
지게 그늘
달리는 오토바이를 핑계 삼아 못 본 척 그냥 지나쳤지만 아닙니다. 분명 보았지요. 유유히 강물 흘러가는 강가 담배 밭. 지난해 물난리로 형편없이 망가진 밭을 그래도 땀으로 일궈 천엽따기까지 끝난 담배 밭, 대공들만 남아 선 담배 밭 한 가운데 두 분은 계셨지요. 불볕더위 속 담배 대공 뽑다가 세워놓은 지게 그늘 아래 앉아 두 분은 점심을 들고 계셨지요.
이글이글 해가 녹고 가만히 있어도 비 오듯 땀줄기가 온 몸을 흐르는 더위. 밭 한가운데 지게를 세우고 지게 그늘 속 두 분이 마주 앉아 점심을 들 때 난 차마 두 분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게 그늘, 그 좁다란 그늘을 서로 양보하며 밥을 뜨는 당신들을 그냥 쉽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못 본 척 그냥 지나쳤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노동의 모습으로, 함께 사는 이가 나누는 가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가슴 속에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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