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95)
언제쯤이나
김정옥 집사가 한 광주리 점심을 이고 염태 고개를 올라간다. 벼를 베는 날이다. 얼굴이 부었다 내렸다 계속 몸이 안 좋은 김정옥 집사. 일꾼을 몇 명이나 얻은 것인지 점심은 한 광주리 가득이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김 집사가 맏딸 명림 씨와 둘째 진성이를 낳았을 때였다. 상자골에 일이 있어 점심을 나르는데 그 모습이 가히 가관이었다. 막 걷기를 배운 딸이야 손 하나 잡아주면 되었지만 진성이는 천생 업어야 했고, 밥이며 찬이며 뜨거운 국까지 들은 광주리는 이고, 주렁주렁 바가지를 엮은 그릇들은 어깨에 메고.
박수근 작/'고목과 여인'(1960년대)
상자골까지 올라 보면 알지만 그냥 오르기에도 벅찬, 울퉁불퉁 곳곳이 패이고 잡초는 우거진 험한 길이다. 그 길을 애를 업고, 광주리를 이고 그릇을 메고 올랐던 것이다.
온 몸으로 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리던 그때 일을 김 집사는 언젠가 웃으며 들려주었다. 이야길 들으며 나도 웃었지만 그림처럼 그려지는 모습에 웃음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때 아기였던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 맏딸 명림 씨는 아기를 둘이나 낳은 아기 엄마가 됐고, 진성이는 엊그제 군대에서 제대를 했다.
이제 그런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일꾼을 그만큼 살 사람들이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이제 웬만한 일은 기계가 대신한다. 한 광주리 점심을 이고 염태재로 오르는 김 집사, 언제쯤이나 저 일은 끝날 것인지.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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