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93)
배춧국
저녁 무렵 강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저만치 일 마치고 돌아오는 아주머니가 있어 보니 조귀농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단강1리라는 같은 행정구역 안에 살면서도 강과 산을 끼고 뚝 떨어져 있어 오히려 다리 하나 사이로 마주한 충청북도 덕은리와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이 조귀농입니다.
원래는 조귀농도 단강교회 선교구역이지만 단강교회가 세워질 즈음 덕은리에도 교회가 세워져 자연스레 조귀농이 덕은교회 선교구역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조귀농 하곤 가까이 지낼 만한 일이 특별히 없었습니다. 그래도 몇 년 시간이 지나며 한 두 사람씩 알게 된 것이 그나마 얼굴만이라도 알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강가에서 만난 아주머니를 알게 된 건 지난 추석 때였습니다. 섬뜰 방앗간으로 쌀을 찧으러 왔다가 방아가 밀려 잠시 교회 마당 나무 그늘에서 쉬는 분들이 있어 차 한 잔씩을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반갑게 인사를 받은 아주머니는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내게 건넸습니다. 배추 몇 포기와 파였습니다.
“갖다가 저녁에 국이라도 끓여 드셔.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뽑아 오는 건데.”
보나마나 아주머니 찬거리지 싶어 몇 번을 사양했지만 그때마다 아주머닌 적은 양을 탓하며 되돌리는 손길을 막았습니다.
저녁상에 오른 시원한 배춧국, 조귀농 아주머니의 넉넉한 정이 배인 배추국은 정말 시원하고 구수했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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