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205)
늙은 농부의 기도
나의 몸은 늙고 지쳤습니다.
텅 빈 나뭇가지 위에 매달려
몇 번 서리 맞은 호박덩이마냥
매운바람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마른 낙엽마냥
어디하나 쓰일 데 없는 천덕꾸러기입니다.
휘휘, 무릎 꼬뱅이로 찬바람 빠져 나가고
마음도 몸 따라 껍질만 남았습니다.
후둑후둑 베껴내는 산다랭이 폐비닐처럼
툭툭 생각은 끊기고 이느니 마른 먼지뿐입니다.
이젠 겨울입니다.
바람은 차고 몸은 무겁습니다.
오늘도 늙고 지친 몸으로 예배당 찾는 건
무지랭이 상관없는 성경 찬송책 옆에 끼고
예배당을 찾는 건
그나마 빈자리 하나라도 채워
불쌍한 젊은 목사양반 허전함 덜려는 마음 궁리도 있거니와
주책없는 몸으로 예배당 찾아
그래도 남은 눈물 드리는 건
거칠고 마른 손 모아 머리를 숙이는 건
아무도 읍기 때문입니다.
이 맘 아는 이
아무도 읍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부지,
여기엔 아무도 읍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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