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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

신의 빛깔로 물들고 싶은가?

by 한종호 2015. 3. 17.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11)

 

신의 빛깔로 물들고 싶은가?

 

 

버림은 모든 덕 가운데 가장 뛰어난 덕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을 정화하고, 양심을 깨끗하게 씻어주며,

마음을 불태우고, 영을 깨우고, 소망에 생기를 주고,

하나님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즘 염색녀(!)와 함께 산다. 천연염색을 배운 뒤부터 그녀는 흰 천만 눈에 띄면 염색을 하려고 달려든다. 심지어 오랫동안 입던 런닝구, 팬티도 흰 색이면 염색의 대상으로 선택된다. 만일 내가 흰 천조각 따위로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녀는 나도 염료를 풀어놓은 물에 집어넣고 주물러댔을 것이다.

봄볕 고운 날, 나는 그녀가 황톳물을 풀어놓고 흰 광목에 염색을 하는 것을 옆에서 거들었다. 물먹은 광목을 그녀 혼자 다루기엔 너무 무거웠으므로. 하여간 열 마쯤 되는 긴 광목을 둘이 붙잡고 황톳물에 천천히 집어넣는 순간, 흰 광목은 고운 황톳빛으로 변했다.

 

 

 

아, 그래! 흰 색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색이지. 나는 그 뻔한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리고 난 혼자 중얼거렸다. 신의 고운 빛깔로 물들기엔 난 아직 멀었구나!

 

내 혼이 이기심, 터무니없는 욕망, 분노, 질투, 편가름 따위를 여의고 흰 광목처럼 정결해질 수 있다면, 나를 물들이고자 하시는 그 지극한 신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을 터인데!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인 나

영혼이 하나님을 아는 데

시간과 공간만큼 방해되는 것도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전체의 부분이지만,

하나님은 통짜(One)이십니다.

영혼이 하나님을 알아챌 수 있으려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수천 년 전 어떤 왕이 벽에다 까만 선을 그어놓고서 현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이 선에 손을 대지 않고서 그것을 더 짧게 만들 방법이 있는가?”

왕의 요구에 현자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머리를 쥐어짜봤으나, 뾰족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문득 한 현자가 나와, 손에 붓을 잡고서, 왕이 그린 선 위에다 훨씬 더 긴 선을 하나 그렸다.

그걸 보고나서 왕이 탄성을 질렀다.

  “그대야말로 진정한 현자요!”

 

그는 왕의 선에 일체 손을 대지 않고서 그것이 더 짧게 보이도록 한 것이다.

 

우리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일 때, 우리는 세상이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한다. 이때 우리는 ‘현자의 선’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나보다 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종교’(religio)가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종교는 나보다 큰, 나를 있게 한 근원자가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이정표와도 같다.

 

하늘에 울타리가 없듯이 종교는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 종파, 교리 같은 것으로 울타리를 치는 것은 사람을 그 속에 가두려는 속셈이 들어 있는 법. 진실한 종교인라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떤 경계석도 세우지 않는다. 종교의 고갱이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믿는 종교만 옳고 다른 이가 믿는 종교는 그르다는 식의 배타적 태도도 갖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광대한 우주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또한 모든 것’이기도 하다. 이런 자각을 갖는 것이 무한하고 불멸의 신성에 눈뜬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통짜(One)의 부분이지만 동시에 통짜이기도 한 것이다.(여기서 ‘통짜’란 우주의 주재―하나님―를 가리키는 표현일 텐데, 나는 이 번역이 참 마음에 든다.)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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