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12)
넌 왜 하나님을 낳지 않느냐고?
무엇이 하나님을 찬미할까요?…
하나님처럼 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찬미할 수 없습니다.
지난 3월 중순, 겨우내 얼어붙은 땅이 풀리고 나서 밤이면 골짜기의 물소리가 제법 세차게 들렸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맹꽁이 우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맹꽁이 소리는 적막한 골짜기의 적막을 깨뜨렸다.
맹꽁 맹꽁 맹꽁……
늦도록 맹꽁이 우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곁에 누웠던 이가 물었다.
“맹꽁이가 왜 저렇게 울죠?”
“짝을 부르느라 저러는 것 아니겠소?”
“봄의 한 절정(絶頂)이군요!”
아, 봄! 낳고 싶어, 저를 닮은 것을 낳고 싶어, 저를 닮은 ‘하나’를 낳고 싶어, 하나가 되는 봄. 그래, 봄! 봄의 절정이구 말구!
맹꽁 맹꽁 맹꽁……
너는 뭘 낳으려느냐고, 너는 왜 너를 닮은 하나를 낳지 않느냐고, 너의 너인 파릇파릇한 하나님을 낳지 않느냐고……
맹꽁 맹꽁 맹꽁……맹꽁이들은 온몸으로 울며 그렇듯 나에게 외치는 듯싶었다.
‘버림’을 배우는 지구학교
우리가 버릴 수 있는 가장 높고 가장 고상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라니?
앞의 하나님이 나를 진정 나 되게 하시는 불멸의 ‘참된 나’를 일컫는다면, 뒤의 나는 세상의 덧없는 것들과 동일시하는 ‘거짓 나’를 일컫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앞의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뒤의 ‘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잘못된 동일시의 ‘나’를 버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집(我執). 그 잘못된 동일시의 ‘나’에 대한 집착의 불을 어떻게 끌 수 있을까.
그런 자각이 있어도 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쉽게 불어 끌 수 없다. 매일 매일의 기도와 명상을 통해, 늘 깨어서 살고자 하는 성실한 수행의 삶을 통해, 숱한 인간관계를 통해 그 아집의 불이 꺼질 때까지 계속 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집의 불’을 불어 끄는 법을 배우라고 이 지구학교에 보내셨는지도 모른다. 예수를 스승으로 모신 이 지구학교에서 우리는 악의를 호의로 대하는 법을 배우며, 증오를 사랑으로 갚는 법, 정의와 평등의 땅을 일구고, 타인들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하나님, 내게 하나님을 없애 주십시오!’하고 기도했던 엑카르트의 그 절절한 기도는 곧 자기 안에 타오르는 아집의 불을 끄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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