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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선의 시편묵상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

by 한종호 2021. 4. 14.

시편 2편 4절

 

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가소로워 웃으시다.(<공동번역>)

 

笑蜉蝣之不知自量(소부유지부지자량)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

 

4절에서 시인은 그 난장판의 야단법석에서 하느님의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1990년 보이저 2호가 바쁜 여정을 잠시 미루어 몸체를 돌려 지구의 모습을 촬영하고는 그 사진을 지구에 전송하였지요. 61km 떨어진 곳에서 찍은 지구는 겨우 0.12 화소에 불과했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사진을 보고 이 우주에서 인생이 몸붙여 사는 지구와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더 선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임무를 제안하고 이끌었던 칼 세이건은 그 사진을 통해 얻은 감명으로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 지구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찌 이리도 무지하고 어리석을까요? 마치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르고 오늘이 시간의 전부인 양 소란을 피우고, 가을을 알지 못하는 여치는 강렬한 햇살과 쏟아지는 소나기의 여름을 세계의 전부인 양 노래합니다. 그러니 철 따라 나는 새들이 말하는 내년과 사시사철 꽃이 핀다는 강남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수 억년의 시간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강건하면 80이라는 이 인생의 숫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진/김승범

 

하루를 늘리셔서는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는 순간순간 그 사이에 하늘의 뜻을 곡진히 담아내시곤 천 년처럼 대하시는 그분의 세밀함과 무엇하나 놓치지 않는 신비한 손길. 아울러 수많은 세대가 거듭되는 장구한 천년을 바라보시면서도 그저 해뜨고 지면 지나는 하루처럼 여기셔서 추구(芻狗)처럼 대하시는 그분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는지요?

 

이러니 신앙이란 은혜을 입어 조금씩 깨달으며, 그분의 지혜를 빌어 배워갈수록 점점 더 모르는 것이 많아지고 알 수 없음 앞에 겸허히 무릎 꿇는 것 아닐까요? 점점 더 모르겠고, 알 수 없음에 젖어드는데 괜히 마음만은 조금씩 그분을 향한 미더움으로 든든해지고 안온해지는 것 아닐까요? 신앙이란 그분의 자비에 젖어들고 그 사랑에 맛들일수록 인생의 모호함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님의 신비를 우러르며 빈 마음이 되는 것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인생들은 신학대전을 쓰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하나님을 체험하자 펜을 내리고는 입을 다물었다는 이야기를 아주 떠들썩하게 예화로 들어놓고도 그의 말없는 가르침에 귀기울이기보다는 한낱 가십거리로 듣고 흘려보내고 마는 건가 봅니다. 이 모두 부지자량(不知自量)의 소치이지요.

 

조금만이라도 진지하게 들여다본다면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점점 더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지평에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아울러 하느님을 알아가며 그분과 점점 친밀해지는 것은 놀랍게도 자기가 누군지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여정이라는 거지요. 그분을 알수록 나 또한 선명해지니 그분을 체험할수록 내가 누군지, 어떤 인생인지 더 잘 알게 되지요. 내가 누군지 알면 자연 제 분수를 알고 이 인생 여정에서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말아야 할지를 구분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자기 분수를 아는 이의 믿음의 여정이란 무엇일지 상상해 봅니다. 하느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창조세계를 놀이터 삼아 아무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그 품에 훌쩍 뛰어드는 자유의 여정일 터이며, 존재의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천진(天眞)을 누리는 것이지 싶습니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이신 분이 없는 것이나 진배없는 이 미미한 것에 눈길을 맞춰주시고 받아주시니 그 오롯한 은총을 누리며 감사하며 그 영광을 노래하는 것 말고 도무지 할 일이 더 없지 싶습니다. 온통 자유와 감사로 가득하니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은 자신들의 헛된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힘씁니다. 자기들의 삶과 행위가 다른 이들에 비해 더 가치있다고 주장하며 비교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타인의 삶을 깍아내리고 덜 가진 이를 구차히 여기고 가난한 이를 게으르다 조롱합니다. 이 땅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저들이 옳아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소리침에 아랑곳없이 이 세상에서 새 길을 준비하십니다. 새로운 다스림을 계획하시고 당신의 뜻에 맞는 이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9절에서 그는 새로운 권능을 지니시고 교만한 배역자들을 부수십니다.

 

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철퇴로 짓부수어라.

群逆粉碎兮 如瓦缶之毁裂(군역분쇄혜 여와부지훼렬)

어리석은 저들을 부수시리니

깨어지는 저들 오지그릇 부서지듯 하리라

 

공든 탑에 쏟아진 마음과 정성이야 적지 않겠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늘 애쓰며 마음 졸이기는 한없는 것 같으나 바스라져 가뭇없는 먼지가 되는 것은 찰라입니다.

얼마나 다행인가요? 애쓴 시간과 졸인 마음만큼 흩어지고 사라지는데도 오래 걸린다면 더 절망스럽고 계속되는 아쉬움에 노예가 되겠지요. 그러니 오지그릇 부서지듯 찰라에 부서지는 것이 차라리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걸음의 토대가 됩니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새로운 초대의 디딤돌로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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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숑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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