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연섭 할머니는 무섭게 일을 합니다. 그야말로 쉴 틈이 없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도 그렇고 넉넉히 사는 자식들 살림도 그렇고 이젠 일 놓아도 될 법 한데, 일하는 할머니 손길은 변함이 없습니다. 열흘이 넘게 걸리는 고된 당근 일에도 빠짐이 없고, 혼자 사는 집 좁은 마당과 방안엔 언제라도 일감들이 널려 있습니다. 모처럼 쉬는 겨울, 아주 쉴 수는 없다는 듯 산수유가 잔뜩 입니다.
혼자 사는 할머니는 혼자 식사를 합니다. 식사 하러 방안으로 들어가는 할머니 두 손엔 밥과 짠지가 들렸습니다. 한 손엔 밥 한손엔 짠지, 그뿐입니다. 쥐코밥상도, 그 흔한 쟁반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두 손으로 밥과 짠지를 날라 맨바닥에 놓고 한 술 밥을 뜹니다. 어둘 녘에야 끝나는 일, 찬밥일 때가 많습니다. 그게 할머니 식사입니다.
탄 아끼느라 불구멍도 바늘구멍만 하게 만들어 놓고, 3년 전 바튼 기침이 끊이질 않는 해수병을 앓다 먼저 세상 떠난 웃는 모습의 남편 사진 벽에 걸린 방에 누워 허전한 잠을 자곤 다음날이면 새벽 같이 또 일을 나가는 할머니.
한 술, 혼자만의 아침을 혼자 들고서.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결혼식 (0) | 2021.04.24 |
---|---|
노는 재미 (0) | 2021.04.19 |
어정쩡함 (0) | 2021.04.17 |
밀려드는 어두운 예감 (0) | 2021.04.16 |
떠나가는 손 (0) | 2021.04.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