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편 3절, 6절
그러나 야훼여! 당신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 머리를 들어 주십니다.〔3절〕
적들이 밀려 와 에워 쌀지라도 무서울 것 하나 없사옵니다.〔6절〕(《공동번역》)
護我四周(호아사주)
無所畏矣(무소외의)
나를 지키시는 당신의 임재 누리고서야
기실 두려워할 것 전혀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시편사색》, 우징숑)
그러니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의 적들을 쳐주소서!” 그것은 사람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제 믿음의 여정과 이 길을 비틀려는 거짓에 대한 정확한 인식입니다. 물러나는 척 하면서 다음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거짓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고 어떻게 변장하여 전혀 새로운 양 접근하여 속삭이고 저를 설득하는지를 복기하는 것입니다. 잠깐 사이면 당신의 길과 세상의 길을 적당하게 섞어놓아(參互錯綜) 분별력을 흐려지게 하는 고약한 짓거리를 살펴 제 마음과 영혼이 얼른 당신께로 피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주님! 흙으로 지어져 이 땅에 거하기에 중력(重力)의 끌림으로 자꾸 흙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생인데 당신은 은총을 베푸셔서 중력을 벗어나 위로 솟아오르는 소망을 주시고 비상(飛上)의 의지도 주십니다. 중력의 지배 아래 있어 자꾸 땅으로 꺼지려는 인생들이 보기에 비상(飛上)의 몸짓은 하냥 어리석은 짓에 지나지 않겠지요. 저들의 놀이는 조롱입니다. 산 위에 배를 짓는 노아를 바라보는 비아냥이 반이요, 어디 저를 구하나 보자며 십자가를 향한 조롱이 반입니다.
그러니 시인이 말하겠지요. ‘鮮民之生 不如死之久矣(선민지생 불여사지구의)’ 의지할 데 없는 고아같은 인생 죽은지 오랜 거와 진배가 없네(《시경》). 그렇습니다. 당신을 의지한다는 것은 때로 이땅에서 고아 같은 인생이요, 의지할 데 없는 인생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제 배를 의지하고, 제 창고를 의지하며, 제 금고를 의지해야 하겠지요. 그래서 믿는 이는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때 이 땅에서 자기를 변명할 그 무엇도 지니지 못한다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사도는 마치 자신이 이 땅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세워지고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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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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