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편 6절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줄까” 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밝으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야훼여.(《공동번역》)
衆庶喁喁望 何日見時康(중서옹옹망 하일견시강)
吾心惟仰主 願見主容光
많은 이 기도합네 웅얼거리나 평강의 때 일랑은 얻지를 못해
나 오직 주님만을 우러르나니 주님의 얼굴 빛 보게 하소서(《시편사색》, 오경웅)
좋은 날 원치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누가 불행을 바라겠습니까? 다들 좋은 날을 바라고 쨍하고 해뜰 날을 기대합니다. 그러면서 다들 두리번거립니다. 그 좋은 날이 어디서 오는지 목을 빼고 혹여 기미라도 보이면 득달같이 잡아채려 덤벼듭니다.
그러나 참된 좋은 날을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찾을 수 있는게 아니지요. 그게 이웃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오롯이 당신을 바라며 우러르는 가운데 허락하시는 당신의 은총으로 인해서이지요.
시인이 그러고 있습니다. 다들 두리번거리고 우르르 몰려다닐 때 그는 홀로 고요한 가운데 당신을 우러릅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고요 가운데 침잠하는 거지요. 호렙산의 엘리야에게 보이셨던 것처럼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당신의 음성을 듣고 그 은총에 감싸이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리해야겠지요.
시인은 그저 당신 얼굴 뵙기를 원합니다. 하느님 계심, 그것이 정녕 인생의 참된 평강이지요. 당신이 뭘 하셔서, 엄청난 기적과 놀라운 일을 행하셔서 우리 인생이 윤택해지는 것이 아니지요. 어린아이가 마구 뛰어놀다가도 엄마 하고 부를 때 부엌에서 세탁실에서 마당에서 대답하기만 해도 아이의 마음은 편안해지면서 다시금 제 할 일에 마음 쏟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당신의 계심을 누리길 원합니다. 주님 계심을 오롯이 누리는 것으로 제 삶의 조리(條理)가 자연스러울 터인데 뭘 따로 더 구하겠습니까?
주님 마치 인생에 행복과 즐거움, 만족한 그 무엇이 따로 있는 양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속삭이는 유혹에서 넘어가 두리번거리는 어리석은 짓을 좀 덜하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계심을 오롯이 맛본 성인(聖人)들이 당신의 은사와 능력과 놀라운 선물마저 다 내려놓고 오롯이 당신만을 추구한 것처럼 그렇게 저도 오롯이 당신만을 구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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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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