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보석상자, 영롱한 추억의 보고(寶庫), 끊임없이 되살아와서 따뜻하게 생(生)을 감싸는 손길, 편안한 귀향(歸鄕), 마르지 않는 웃음들, 싫증나지 않는 장난감이 가득한 방, 끈끈한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곳, 그게 어린 시절이지 싶다.
지난 2월 19일 단강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작은 교실 한 칸에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학부모들과 내빈들이 둘러앉았다. 뒤편으론 몇 사람이 서기도 했다.
사무실용 의자를 옆의 사람에게 양보를 하고 난 정말 오랜만에 작은 초등학교 때 앉아 공부하던 작은 의자에 앉았다.
연필로 혹은 칼로 금을 그어 짝과 경계를 정하고 나란히 앉아 공부했던 그 어린 시절. 내 자릴 넘었다고 때론 짝꿍과 다투기도 했지만 실은 모든 것이 넉넉했었지. 우리들 이름이 적히기도 했던 칠판도 그랬고, 층층이 도시락을 올려놓던 난로도 그랬고,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했던 교실도 그랬고, 부끄러움 모르고 나누어 먹던 급식 빵도 그랬고, 운동장도 그랬고, 축구 골대도 그랬고, 운동장 둘레 나무도 그랬고, 교문도 그랬고, 태극기가 걸리던 국기봉도 그랬고, 동네를 두르고 봄가을이면 소풍을 가던 사방 산도 그랬고, 모든 것이 크고도 넉넉했는데 얼마의 세월을 두고 이젠 느낌이 예전과는 다르니. 지나고 보면 작아 보이는 것들. 그건 이래저래 좋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43회 졸업식에 졸업생은 13명이다. 점점 심해지는 이농현상을 따라 아이들도 줄어든 것이다. 지난 번 버스에서 만난 교장 선생님은 올해 한 학급이 줄어들게 됐다며 걱정을 했다. 전교생이 70명이었는데 올해에는 그보다 더 줄어 한 학급을 줄이게 됐다는 것이다. 한 학년에 최소한 12명이 되어야 하는데, 결국은 2명이 모자란 두 학년을 한 학급으로 묶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은 두 분이 줄어들게 되는데 없어진 반 선생님하고, 교감선생님이 수업함으로 쉬게 되는 분 그렇게 두 분이 줄어든다고 했다.
한해 두해 이렇게 지내다 보면 결국은 어찌되는 것인지. 맨 뒤에 앉아 지켜보는 한 시골 초등학교의 졸업식이 참으로 착잡했다.
졸업하는 어린이를 위해 교회에서는 해마다 장학금을 준비하는데 시상 순서 맨 나중,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난 무슨 선언문을 읽듯 장학증서를 읽었다.
“우리의 미래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있음을 알기에, 어린이들이 갖는 꿈과 희망에 의해 우리의 내일이 마련되는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위의 어린이를 위하여 작지만 따뜻한 정성을 모아 기쁜 마음으로 이 장학금을 드립니다.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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