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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눈물겨움

by 한종호 2021. 5. 24.

 


이따금씩, 뜻도 없이 눈물겨울 때가 있다. 서울 종로서적 앞, 일찍 내려진 셔터에 몸을 기대고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오가는 사람들, 정말 많은 사람들, 멍하니 그들 바라보다가 불쑥 시야가 흐렸었다.


언젠가의 졸업식. 축하할 사람 만나지도 못한 채 한쪽 구석 햇볕 쬐며 잔디밭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다가 그때도 이유 없이 눈물이 솟았다.


저녁 어스름 코트 깃 세우고 서둘러 귀가하다가 문득 바라본 2층 양옥집. 불 켜진 방 한 개 없었고 빨래만 2층에서 펄럭이고. 그때도 그랬다. 한참을 서 있었다.


얼마 전 수원을 다녀오며 차창 밖, 미친 듯 휘날리는 춘설을 보면서도 ‘살아야지, 살아야지’ 확 치민 뜨거움에 또 눈이 젖었었다. 무심히 창문만 닦았다.


동부연회 마지막 날. 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목사 안수식이 있다. 차량 또한 붐비고도 밀렸다. 화사한 옷차림. 손에 든 꽃다발과 예쁜 포장의 선물들. 건네는 악수, 미리 찍는 사진.


사각모만 썼으면 꼭 졸업식장 같았을 텐데. 그렇담 뭘 졸업하는 걸까.한쪽 구석에 서 있다가 빠져 나오고 말았다.


안수를 앞두고 마음만 착잡할 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선배. 며칠 전엔 잠이 안와 늦은 밤 발가벗은 채, 왜 하필 발가벗었을까, 제단에 엎드려 있는 또 한 선배.


모르겠다.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선, 정말로 축하하고 싶은 자리, 쓸데없이 왜 또 눈물겨웠을까.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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