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치다
책의 양 날개를
두 손의 도움으로
책장들이 하얗게 날갯짓을 하노라면
살아서 펄떡이는 책의 심장으로
고요히 기도의 두 손을 모은다
느리게 때론 날아서
글숲을 노닐다가
눈길이 머무는 길목에서 멈칫
맴돌다가
머뭇거리다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내 안으로 펼쳐지는 무한의 허공을
가슴으로 불어오는
자유의 바람이 감당이 안 되거든
날개를 접으며
도로 내려놓는다
날개를 접은 책
책상 위에 누워 있는 책이지만
아무리 내려놓을 만한
땅 한 켠 없더래도
나무로 살을 빚은 종이책 위에는
무심코 핸드폰을 얹지 않으려 다짐한다
내게 남은 마지막 한 점의 숨까지
책과 자연에 대하여 지키는 한 점의 의리로
하지만 내게 있어
책은 다 책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책이란
돈 냄새가 나지 않는 책
탐진치의 냄새가 나지 않는 책을 말함이다
그러한 책 속에는
사람의 손을 빌어 쓰신
하늘의 뜻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학급문고 만들기 숙제로 주어진
책 하나를 만나기 위하여 처음으로 들어간
동네 모퉁이 작은 서점 그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한 그루 어린 나무가 되었다
서점 안에 있는 책들의 제목을 일일이 모두 다
제 가슴에 비추던 중학생 그때의 마음은
오늘도 한결같아서
고즈넉이 혼자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고
자유의 푸른 바람이 펄럭이는
하늘 냄새가 나는 그런 고마운 책에게는
자유의 날개를 펼쳐주고 싶다
내게 주신 이 작고 고마운 두 손으로
'신동숙의 글밭 > 시노래 한 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방의 벽이 없는 집 (0) | 2021.06.21 |
---|---|
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0) | 2021.05.31 |
박모종 (0) | 2021.05.26 |
한 음의 빗소리 (0) | 2021.05.25 |
터치폰과 지평 (0) | 2021.05.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