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떠나시는 날 찬비가 내렸습니다.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는 바람과 함께 흩뿌린 겨울비는 가뜩이나 당신 보내며 허전한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렵게 했습니다.
질컥질컥 내리는 겨울비가 여간 궂은 게 아니었지만 어디 당신 살아온 한 평생에 비기겠습니까.
부모님 세대는 아무래도 불행한 시절을 사셨습니다. 일제며, 난리며, 보릿고개며, 이래저래 8년씩이나 당신이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나무장사 품 장사로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아주머니의 설움과 눈물. 병상에서 아주머니 눈물 흘리며 지난 시절 말하실 때 “뭘 지난 일을 갖고 그려” 하셨던 당신.
초등학교 그만둔 자식들이 “엄마, 호멩이질이 모두 글씨로 보여.” 했다며 재주 많은 자식들 못 가르친 한(恨) 눈물로 말할 때 깊이 팬 두 눈만 껌벅이셨던 당신.
바튼 된 기침을 두고도, 그토록 야윈 몸을 두고도 죽음의 기운까진 몰랐던 저희가 어리석었습니다. 당신 대신 한복을 입고 정월 초하루 병원을 찾았을 때만 해도 그렇게 며칠 쉬시면 곧 나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 며칠을 두고 떠나시다니요.
가족들의 울음소리에 놀라 병원으로 뛰어갔을 때, 당신은 병실 밖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양 손과 양 발이 침대에 묶인 채 무척이나 괴로워하셨던 당신, 매달린 병들로부터 나온 어지러운 선들과, 당황한 의사와 간호사들의 바쁜 손길이 겨우 당신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저만치 망연히 서서 두 손 모았을 뿐 너무도 무력했습니다.
“저만치 나가계시죠.”
의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내 무력함은 내 스스로 당신으로부터 멀기만 했습니다. 지켜달라는 기도를 뒤로 하고 앰뷸런스에 실려 서울로 가신지 삼일, 꼭 삼일 만에 당신 떠나셨다는 소식을 늦은 밤 망연히 들었습니다.
유난히도 심했던 지난 여름 장마, 산에서 마구 쏟아져 내려오는 물이 땅콩 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물길 만들며 함께 비 맞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 땅콩 옆에 있는 밭, 제법 큰 밭에서 혼자 고추를 따던 당신과 이야기를 나눈 지난가을, 유난히 저녁놀 붉었던 시간도 기억납니다.
2년여, 길지 않은 시간을 두고도 당신은 내게 한없이 선한데 한평생 같이 살아온 이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김천복 할머니는 눈물도 많으시죠. 당신 돌아가실 때 잊지 않고 하셨다는 말, 그 노인이 병원까지 찾아오셔서 여간 고맙지 않았다고 꼭 전해 달라시던 당신의 그 말을 김천복 할머니는 몇 번이나 더 하시며, 그때마다 눈물을 닦았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많은 이가 몰래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산수유 씨 빼느라 움푹 손톱이 닳은 당신을 두고 어릴 적 새총까무리를 떠올렸던 제 철없음을 이젠 용서하십시오. 홀로 누워계신 당신을 두고 이내 자리를 뜨곤 했던 제 정 없음도 용서하십시오. 그런 절 두고 좋은 이라 했다니 당신의 마음이 넓습니다.
당신과 함께 한 시간들, 그 짧은 시간들, 악수한 손에 체온 남아있듯 왠지 따뜻합니다. 고통도 병도 없다는 하늘나라, 당신의 바튼 된 기침도 말끔히 멎었으려니 생각하면 저도 기쁩니다.
예배당 난로 뒤쪽, 당신이 늘 앉던 그 자리,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 그때도 당신 자린 그 자리입니다. 따뜻했던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박종석 성도님.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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