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부엌에는
늘 빈 곳이 있다
씻은 그릇을 쌓아 두던
건조대가 그곳이다
바라보는 마음을 말끔하게도
무겁게 누르기도 하던 그릇 산더미
그곳을 늘 비워두기로
한 마음을 먹었다
숟가락 하나라도 씻으면 이내
건조대를 본래의 빈 곳으로
늘 빈 곳 하나가 있으므로 해서
모두가 제자리에 있게 되는 이치라니
이 세상에도 그런 곳이 있던가
눈앞으로 가장 먼저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하늘은 늘 빈 곳으로
이 세상을 있게 하는 듯
구름이 모여 뭉치면
비를 내려 자신을 비우듯
바람은 쉼없이 불어
똑같은 채움이 없듯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던가
가슴에 빈탕한 하늘을 지닌 사람
그 고독의 방에서
침묵의 기도로 스스로를 비움으로
산을 마주하면 산이 되고
하늘을 마주하면 하늘이 되는 기도의 사람
늘 빈 곳에선
떠돌던 고요와 평화의 숨이 머문다
고요와 평화는
숨은 진리와 사랑의 본래면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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