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20분. 어김없이 자명종이 웁니다. 날랜 벌래 잡듯 울어대는 시계를 끕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주섬주섬 옷을 입습니다. 새벽공기 차가운 마당에 나서면 그제야 잠이 달아납니다. 가을 새벽하늘 별들은 시리도록 맑습니다. 밤새 이슬로 씻은 듯 깨끗합니다.
캄캄한 예배당, 오늘도 아무도 없습니다. 제단 쪽 형광등 2개와 십자가 네온에 불을 켭니다.
새벽종을 치기 전 늘 망설임이 지납니다. 여린 마음 탓입니다. 소리를 낮춰 종을 칩니다. 새벽 어둠속으로, 고단한 잠자리로 종소리는 달려갑니다.
잠시 후 개 짓는 소리, 그리고 예배당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들어서는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짐작이 갑니다.
대개는 둘, 간혹 셋이서 예배를 드립니다. 벼 베는 철, 납덩이 같이 무거운 몸 일으키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잠자리에서라도 기도로써 하루의 문을 열고자 한 서로의 약속을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지독한 독설과 저주, 새벽부터 그런 말씀 대하기가 꺼림칙하기도 하지만 그런 독설과 저주 밑엔 언제나 예레미야의 눈물이 있습니다. 대언자(代言者)의 안쓰러운 고뇌가 무딘 마음을 흔듭니다.
그렇게 짧은 예배를 마치고 제단에 무릎 꿇으면 말을 더듬게 됩니다. 말(言) 너머 계신 그 분께 말(言)로써 나아가는 게 늘 어렵습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일들. 기도의 자리, 그 떠올림도 기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쉽게 발이 저리고 마음은 짧습니다.
예배당 문을 나서며 아직 깨지 않은 동네를 보면서야 뒤늦은 인사를 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평안하십시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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