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는 몇 가지 소리가 남아있다. 메아리 울리듯 지금껏 떠나지 않는 소리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고향집 뒤편 언덕에서 들려왔던 통곡소리다.
쌓인 눈이 녹았다가 간밤 다시 얼어붙어 빙판길이 된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집 뒤편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울음이 아니라 통곡소리였다.
바로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였는데, 그때 그 아주머니는 언덕너머 동네에서 계란을 떼다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계란을 떼 가지고 오는 길이었는데 빙판이 된 언덕길에 미끄러져 그만 이고 오던 계란을 모두 깨뜨려버린 것이었다.
듬성듬성 미끈한 소나무 서 있던 뒷동산, 털버덕 언 땅에 주저앉은 아주머닌 장시간 대성통곡을 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 어릴 적 기억, 그러나 그때 계란 깨뜨린 아주머니의 통곡소리는 아직껏 남아 있다.
무얼까? 세월로도 지워지지 않은 그 소리는 무엇 때문일까? 내 가난한 이웃의 슬픈 소리가. 언 땅에 주저앉아 터뜨린 울음소리가 통곡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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