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맙습니다, 잘 견뎌주셔서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하박국 3:17-19)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코로나 단계적 완화 조치가 시행된 첫 주입니다. 뭔가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만, 마냥 즐거워할 수만도 없습니다.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는 줄어들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저는 코로나19가 몰락을 향해 가는 우리 문명을 향해 하나님이 보내신 멈춤신호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더 큰 세계를 상상하는 걸 포기한 채 소비사회의 논리를 횡단하는 일에 몰두하는 교회에 대한 경고라고도 말했습니다. 섣부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를 문명사적 전환의 계기로 삼지 않는다면 인류는 재앙적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음식 배달이 줄었다지요? 반면 식당은 상당히 붐빕니다. 사람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백신 접종 유무와 관계없이 좌석수의 50% 정도의 회중이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칸 띄어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직 공동식사는 할 수 없지만 잠깐 동안의 소모임은 허용된다고 합니다. 도무지 모일 수 없었던 시절에 비하면 아주 많은 가능성이 우리 앞에 열린 셈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최선을 다해 방역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들도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을 느낀다든지,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에 다녀오신 분들은 영상을 통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열린 기회의 문이 다시 닫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후면 벌써 입동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에 겨울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가을 내내 정신적 여백 없이 지냈습니다. 딱히 할일이 많았다기보다는 그저 뭔가에 붙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인들이 단풍 든 산 사진을 올리거나,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을 보면서 함께 즐거워하기도 했지만,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저의 뿌리 깊은 버릇이 스스로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통보하듯 “나 오늘 산에 갈 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생급스런 남편의 선언에 아내는 잠깐 놀란 눈을 하더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사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월요일이면 거의 무조건 산에 올라갔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루틴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에게 바위 타는 것을 가르치면서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산에서 사고를 당하고, 그 부상의 후유증 때문에 시달리면서부터 산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늘 둘이 함께 다니던 산에 혼자 가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다보니 등산화는 다 낡아졌고, 그 때 입었던 등산복도 얼추 사라졌습니다.

장 안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배낭을 꺼내고, 입을 만한 옷을 찾아내고, 아내가 얼마 전에 사 둔 스틱까지 챙겼습니다. 보온 도시락에 점심까지 담고 나니 소풍을 가는 것처럼 설렜습니다.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 쓸쓸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집을 나섰습니다. 오랜만의 산행이니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구기동 계곡을 들머리로 하여 사모바위와 승가봉을 거쳐 대남문에서 구기동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대충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산은 정말 한산했습니다.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오래 전 여름이면 찾아가 그 그늘 아래 머물곤 하던 귀룽나무는 벌써 잎을 다 떨군 채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물소리는 고요했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낙엽이 우수수 쏟아졌습니다. 졸가리 사이를 파고드는 햇살은 맑고 깨끗했습니다. 바닥에 깔린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잎 위를 걸을 때 자박자박 나는 소리가 가만가만 제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습니다.

승가사 입구에 잠시 앉아 다리쉼을 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꽤 많은 이들이 북적거리는 자리인데, 그날만큼은 저의 독차지였습니다. 한참을 그 호젓한 고요 속에 머물렀습니다. 산길을 걷다 보니 다 잊은 줄 알았던 산 모양, 바위 형태, 길의 굴곡 등이 마치 어제의 일인 듯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산은 늘 그곳에 있으면서 찾아오는 이들을 그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모바위 앞에 군락을 지어 피어나던 쑥부쟁이도 일부 남아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승가봉 위에 서서 바라본 북한산 연봉이 장관이었습니다. 가을색으로 물들어 가는 산에 한동안 취해 있었습니다. 대남문 근처에서 한적한 자리를 찾아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돗자리도 챙기지 못해 바닥에 놓고 먹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어디선가 낑낑 거리는 소리가 들려 둘러보니 개 여섯 마리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서였을 겁니다. 유기견들이 산에 머물며 야생화 과정을 걷는다는 보도가 떠올라 약간의 경계심이 발동되더군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개들도 순순히 물러났습니다.

하산하려고 생각하니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걷다가 정릉계곡으로 내려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걷다보니 만경대, 노적봉, 인수봉, 백운대 연봉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하얀 화강암 바위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웅장해집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 백운대에 이르렀고, 그 때쯤에는 무릎과 고관절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태극기 깃대 아래 서서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조심조심 바윗길을 내려와 위문 근처에서 잠시 쉬었다가 북한산 탐방로 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면서 힐끔힐끔 인수봉을 바라보았습니다. 직벽에 매달려 정상을 향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올라가는 이들이 보였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암벽등반을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이내 떨쳐버렸습니다. 산기슭에 다가올수록 단풍나무 붉은 잎이 더욱 선명한 색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탐방로 입구에서 전철을 타는 곳까지 내려오는 길이 조금 길어 지루한 듯 했지만, 산이 준 늡늡한 마음 덕분에 기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올 가을 들어 제가 누린 호사를 자랑하느라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영문 모를 억울하다는 느낌을 씻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걸었거나, 한라산, 지리산, 월악산, 두타산, 소백산 같은 산을 다녀오신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북한산 정도 걸었다고 자랑질이냐고 하지 마십시오. 제게는 나름의 최선이었습니다. 교우들과 어울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걷는 시간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지금 우리는 매우 중대한 역사적 고빗길에 서 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그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는 지금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위기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 지구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안건들을 논의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에서 책임적인 일원으로 동참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문 일부입니다.

“한국은 오늘 2030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상향을 공식 약속합니다.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이상 감축하는 것입니다. 짧은 기간에 가파르게 감축해나가야 하는 매우 도전적인 목표입니다. 30%의 메탄 감축 방안도 포함했습니다. 한국은 ‘국제메탄서약’에 동참합니다. 한국의 성장 경험을 살려 개도국의 저탄소 경제 전환을 돕는데도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녹색기후기금과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를 통한 기후 재원 지원을 계속하고, ‘기후기술센터 및 네트워크’를 통해 녹색기술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겠습니다. 그린 뉴딜 ODA(*공적개발원조)를 늘리고,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의 민관 파트너십을 통한 지원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한국은, 기후 행동이 어떤 경우에도 온실가스 증가를 초래하지 않아야 한다는 환경 건전성의 정신을 지지합니다. 또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나라로서 선진국들이 바라는 ‘감축’과 개도국들이 바라는 ‘적응과 재원’이 균형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적극 기여하겠습니다. 오늘 ‘행동과 연대’의 약속으로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울창한 숲과 맑은 강물이 미래세대와도 대화를 나누길 바랍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한국은 항상 함께할 것입니다.”

여기 굳이 이 연설문을 인용하는 까닭은 이런 공약이 말뿐인 공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기어코 도달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입니다. 정부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적 소명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정치, 문화, 사회, 종교 등 모든 부문에서 경제 논리가 생명의 논리를 압도해왔습니다. 생명과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생명 중심적 사고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시대에 기독교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돌아오는 주일은 우리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사람마다 소회가 다를 것입니다. 절망의 심연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힘겹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만 하니 다행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꿈꾸고 바랐던 일이 다 잘 될 때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렁 속에 빠져드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몸을 낮추는 이들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렇게라도 견디며 사는 것은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격절감과 고립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우리가 주님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내면 깊은 곳에서 힘이 솟아오릅니다. 여러분들이 제게 문자 메시지나 메일을 통해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소감을 보내주셨습니다. 어느 한 분도 그늘이 없는 밝음만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늘 속에서 밝음을 지향하는 삶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잘 견뎌주셔서. 우리가 함께여서 참 다행입니다. 이제 곧 찬 바람이 불어오겠지요? 참 사람의 온기가 그 어느 때보다 그리운 시절입니다. 주님을 모셨으니, 누군가의 시린 마음을 감싸는 이불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모든 교우님들의 삶에 빛이 되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11월 4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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