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엔 또 불고 있으리니

<꽃자리> 출간 책 서평 2021. 12. 31. 07:10
  • '길잃은 양일수록 상처는 많아
    끌지않고 업고와야하는..'
    업으려면 다리를 접고 허리를 굽히고 들어메야 하고..
    무엇보다, 양에 묻은 진흙, 지푸라기, 덤불, 그리고 퀴퀴한 냄새까지 등에 밀착해서 함께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교회. 끌고가려고하지 업고가려고는 안하는.. 목회자..

    2022.01.01 10:56

 

 

 

오래 전, 관옥 이현주 목사님이 보내주신 연하장에는 ‘오늘 하루’라는 붓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씨는 나를 침묵 속으로 데려가 잠시 시간을 멈추게 했습니다. ‘오늘’이라는 말과 ‘하루’라는 말이 무척 새롭게 그리고 퍽 무겁게 와 닿았습니다. 이후로 이런 하루, 저런 하루, 어떤 하루, 그때 하 루, 내일 하루… 그 하루마다 ‘오늘’이고 그 오늘마다 ‘하루’ 였습니다.

 

한희철 목사님은 이 책 제목을 ‘하루 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걸음과 길’이란 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럭저럭 별일 없이 지내는 하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하루가 모여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길은 걸음과 걸음이 모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규암 김약연 선생께서 말씀하신 유언입니다. 이 말씀을 만나면서 무덤가의 정직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한 목사님은 자신이 붙인 이 책 제목처럼 오늘 길어 올린 ‘생각’을 스스로 걸어갈, 걸어야 할 ‘길(행동)’이라고 여깁니다. 문장마다 또한, 그 행간에서 울리는 숨과 같은 고백이 마음에 새겨지는 까닭입니다.

 

이 책에서 한 목사님은 한국, 중국, 미국, 유럽 등 동서고금 에서 오늘날 전해져 오는 철학자들과 시인, 예술가와 지식 인들의 이야기를 오래 음미하고 ‘제 것’을 만들어 ‘그 생각’ 을 내놓았습니다. 마치 어미 새가 사냥도 서툴고 위도 약한 새끼들을 위해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충분히 씹고 씹어 모이를 주는 것과 같이 말이지요. 사람을 아끼는 사랑 없이는 힘든 작업입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없이는 나오기 힘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이자 동화작가인 그는 ‘맘곱’(눈가에 찌끼를 말하는 눈곱 처럼 손톱 밑에 끼는 때를 손곱, 발톱 밑에 끼는 때를 발곱이라 한다. 그렇 다면 ’맘곱‘은 없을까,라고 말하는 언어 조크)이란 말을 지어내 사용 하고 싶을 만큼 언어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우리말’을 아끼는 마음은 그가 지닌 품성에서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마음에 낀 때’는 없을까?라는 반성과 겸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까닭입니다.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고고학자가 유적지를 캐내 듯 여기저기 묻혀 있는 숨겨진 단어들을 정성스레 찾아냅니다. 곡괭이나 호미로 서둘러 파는 것이 아니라, 혹시 깨지 고 상할까봐 여린 붓으로 쓸어가며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찾아냅니다. 그리하여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말들이나, 시골집에 놔둔 말이나,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말들, 다락에 숨겨뒀다 잊어버린 말들을 우리 앞에 꺼내놓습니다.

 

그 말들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아닌, 잠시 잊었던 익숙함처럼 정답고 포근한 냄새가 납니다. 그렇게 찾아낸 보물 같은 단어들은 목회 현장으로 나서기도 하며, 진솔한 고백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며, 때론 역사와 사회에 대한 외침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그 말들이 지닌 언어의 힘으로 ‘말하고자’ 하는 ‘말’의 적절하고도 품위 있는 표현이 됩니다. 그것은 한 목사님이 ‘하루하루’마다 모든 사물과 현상 앞에서, ‘만들어진 언어’ 이전의 ‘선험적 언어’를 묵상함과 같으며 언어 자체보다 ‘사람’을 향한 연민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시시한 일상을 주워서 주머니에 넣은 채 좀처럼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공부하는 방으로 몰래 가지고 들어가 화분에 난을 키우듯 고요하게 이야기들을 키워냅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누구도 모르는 사이, 꽃이 열리고 향기가 피어오르면 슬며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만나는 문장들은 이렇듯 작고 낮은 것들을 향해 있는 그의 천성이 빚어낸 뜰에서 피어난 나무와 풀과 꽃들입니다. 이내, 이 뜰은 그 분을 닮은 ‘신의 정원’이 됩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이 아니라 모르는 만큼 말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르는 만큼 씁니다. 말이나 글로 담아내지 못한 더 깊은 세계는 늘 침묵 속으로 침잠합니다. 얼마나 조심스럽고 고요한 마음으로 이 책을 내놓는지 헤아릴 수 있는 글입니다. 사실 저는 한 목사님이 쓰신 글은 낯선 것이 없을 만큼 정답고 많이 익숙합니다. 그가 쓴 동화 ‘소리새’로 92년에 만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마음을 주고 받았으니 말입니다. 물론, 단강에서 목자로 살며 기록했던 ‘얘기마을’은 읽을 때마다 눈물을 감추느라 힘이 들곤 합니다. 그래도 이번엔 태연하고 무심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만 이 문장 앞에서 울컥하고 맙니다.

 

“길 잃은 양일수록 상처는 많아

끌지 말고 업고 와야 하는 것은”

 

‘목자’라는 글입니다. 교회를 잃은 이 기막힌 시대를 향한 ‘목자로서’ 다짐하는 그 심정이 뭉클하게 묻어납니다. 목회자이니 홀로 삼킨 말도, 꺼낼 수 없는 말도 얼마나 많았을 까요. 그리하여 제법 오래 삭인 말들이 이렇게 책이 되었습 니다. 기억에서 사라진 언어들이 바람처럼 흩어져 뵈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어딘가엔 또 불고 있을 테니까요. 그가 ‘오늘 쓰려다’ 잊어버린 말이 있다 해도 그리 큰일은 아닙니다. 어딘가엔 그 뜻이 전해지고 있을 테니까요.

 

가수 홍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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