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느 하루도 황폐하도록 기진하지 않는 날이 없다.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추악한 요괴들이 도처에 출몰해서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온 몸에 독(毒)이 퍼지겠다 싶을 정도다. 어쩌겠는가. 그러나 이렇게라도 싸우지 않으면 “악의 퇴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중에도 우리의 영혼을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병이 깊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때에 좋은 말씀 한 구절 가슴에 스미면 그게 그날의 구원이다. 우린 어느새 사원(寺院)을 잃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일년 열두달, 계절까지 포개어 하루하루의 짧은 일기처럼 쓰여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은 잠언이자 시편이며 말씀이다.
그건 세월로 빚어낸 영혼의 노작(勞作)이며 우리 모두를 위해 길어올린 기도의 생수(生水)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詩’란 ‘언어言의 사원寺’이다.” 우리는 그가 세운 사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자신을 위한 방으로 인도되고 그 안에서 침묵하는 법을 배우며 벽을 마주하여 수련하는 자세를 익히고 숲속의 나무 한 그루가 되어 살아가는 시간을 깨우친다.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실력이나 능력만이 아니다. 더욱 신뢰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이다. 진실에서 비롯된.”
이런 족자가 걸려 있는 방에서 우리는 과욕을 부려 산 겉옷을 벗게 된다. 더는 껴 입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쁜 놈, 어리석은 놈’이라는 제목의 글은 이렇다. “그 중 나쁜 놈은, 다른 이의 분노를 자극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놈. 그 중 어리석은 놈은, 누군가의 충동에 생각 없이 분노하는 놈.” 해서 이런 충고도 더한다.
“북소리가 들리면 춤 출 일이 아니다. 북을 누가 치는 지를 살필 일이다.”
우리의 허위를 치는 목탁 소리도 들려준다. “말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삶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말없이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말로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는 우리가 놓치 말아야 할 줄이 무언지 넌지시 일러준다.
“누군가를 향해 가장 먼 길을 걸어가는. 사랑이란....” 그러기에 이런 말도 이어나간다. “사랑하지 않은 시간. 가장 큰 낭비란...”
‘어느 날의 기도’라는 제목의 글은 진실의 길로 들어서는 법을 깨닫게 한다. “제게 필요한 것은 촛대가 아니라 빛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궁핍한 시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과 피로 빚은 떡과 술을 나눠주는 수도승이 있다.
하여 그는 시편을 인용하면서 이런 글을 우리에게 편지처럼 띄운다.
“‘눈물을 흘리며 씨 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 씨를 담아 들고 울며 나가는 자, 곡식단을 안고서 노랫소리 흥겹게 들어오리라’(시편 126:5~6, 공동번역).
시편의 노래는 내 안에서 다른 시 하나와 만난다.
‘거친 들에 씨 뿌린 자는 들을 잊기 어렵나니/어찌 견딜 수 있는 곳을 가려 아직 너의 집이라 하랴’황동규의 <비가悲歌> 제5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울며 씨를 뿌린다니, 씨를 담아 들고 울며 나간다니, 생각만 해도 먹먹해진다. 고운 땅이 아니라 거친 들에 씨 뿌리는 자는 들을 잊지 못한다. 안락한 곳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곳을 오히려 자기 존재의 집으로 삼는다.
세상은 그렇게 뿌린 씨로 밥을 먹고 산다. 누가 씨를 뿌렸는지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채로.”
아, 하는 탄성을 냈다. 그리고는 다음의 글을 경귀로 삼는다.
“우리가 어떤 짐을 싣고 어떻게 가는지는 세상이 안다. 굳이 우리가 요란한 소리를 따로 내지 않아도 말이다.”
한없이 부끄러움을 배우게 하면서도 한없이 기쁘게 만드는 책 한권,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권한다. 등불을 놓친 어두운 길에서도 헤매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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