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두리번거림 없이/-눈부시지 않아도 좋은, 하루 한 생각을 읽고
<한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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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 때부터 철이 삼촌이 좋았다. 따뜻하고 재미있고 나를 예뻐하는 삼촌이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과 북적이며 살았던 덕분에 타닥이며 돌아가는 전축판에서 해바라기, 조동진의 노래를 들으며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이다.
어느 날 삼촌의 손을 잡고 나타난 여인을 봤을 때의 충격, 그 이후 삼촌에게 하나 둘 아이가 태어나면서 점점 멀어져간 조카 사랑, 이 모든 걸 웃음으로 떠올리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삼촌보다 훌쩍 더 많은 나이,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글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그게 삶이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철이 삼촌이 목사인 것보다 작가인 것이, 정말 좋다. 삼촌의 책이 나올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는다.
<하루 한 생각>이라는 예쁜 책에 작은 글씨로 덧붙여진 ‘눈부시지 않아도 좋은’ 이라는 문구가 더 크게 마음에 들어왔다. 단숨에 읽을 수도 있었지만, 아끼고 아껴가며 천천히 읽었다.
얼마전 내가 좋아하는 한 가수가,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무기력증에 시달려 힘들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노래가 무슨 소용이 있고,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지금까지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먼 땅에서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냥 생각을 멈추려고만 애썼다.
삼촌의 글은 가끔, 생각을 멈추기 위해 생각하도록,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더욱 노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니까 이것이 ‘유용성이 없는 아름다움’과 어느 한 끝이 닿아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삼촌의 문장들은, 고흐가 갖고 싶던 ‘좀 좋은 거울’보다 ‘좀 더 좋은’, 거울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삼촌의 마음은 그냥, 사랑이다. 사랑한다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아는, 빈 둥지를 지키는 어미새의 마음,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의 닻이다.
많은 말이 꼭 많은 생각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스스로 조금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나는, 죽어 나비가 되고 싶었던 할머니나, 마스크 쓴 구십이 된 노인네나, 세월,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벌컥 벌컥 화가 나거나, 화를 못이겨 눈물이 나거나, 그러다가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을 지내거나, 정말, 그뿐이다.
절제된 삼촌의 글에는 백마디 말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삼촌의 생각과 삶과 사랑이 절절히 담겨 있다. 그 글을 읽는 것만으로, 그런 삶을 엿볼 수 있는 것만으로, ‘괜찮다’는 나직한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삼촌이 주어진 길을 가시기를, 두려움 없이, 두리번거림 없이.
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 편집자 주/ 호주에서 살고있는 글쓴이, 한규연 님은 저자 한희철 목사님의 조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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