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잠언 16:19)
나라의 수장이라는 이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몰아내야 한단다. 35회에 걸쳐 ‘자유’ 운운한다. 세상 도처에는 이렇듯 오만불손하고 안하무인에다가 강한 힘을 과시하는 자로 인해 고역을 치르는 이들이 숱하다. 강자들이 전리품을 얻는다는 것은 이들이 겪는 고난과 상처를 전제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강자 편에 붙어서 약자들을 짓밟아 강탈해낸 전리품의 찌꺼기라도 얻으려 든다. 마음이 겸손한 이들의 자리에 서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낮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누리려는 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을 말함이다. 거만하게 압박하는 자의 줄에 서지 않음을 뜻한다. 상처를 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게 사는 자들과 섞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도리어, 이런 일로 말미암아 그 마음에 호소할 데 없어서 헤매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어디에도 갈 데 없이 바닥에 내려앉은 심령과 육신을 끌어안고 함께하는 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그런 삶에 역사하신다.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길러내신다. 난폭한 강자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힘, 지혜, 그리고 사랑의 연대를 만드신다. 서로에게 겸손하며, 온유하고, 아끼고, 위하는, 그런 마음은 낮은 곳에서 온다.
높은 곳에만 가려는 마음, 상석을 지향하는 마음은 바닥에 처한 심사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것을 패배의 증거쯤으로 여기며 전쟁의 윤리를 찬양한다. 전쟁에서 진 자는 할 말이 없고 노예가 되는 것은 마땅하다는 생각을 전파한다. 정복자의 탐욕과 폭력을 문제삼지 않는다. 그걸 문제삼는 것을 오히려 비난한다. 현실에 충실하라고 다그친다. 강자가 이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진 자가 바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본래 전리품을 얻기 위한 전쟁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길러나가는 자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쓰러진 자를 일으켜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쓰러진 자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현실을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인 양 세뇌시키는 세상을 향해, ‘아니다!’라고 외쳐야 한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의지할 데 없는 그런 처지와 형편을 알지 못하는 자는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런 처지가 되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약한지를 알지 못하는 자는 겸손할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생명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저마다 세상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현실에서 우리는 마음이 낮은 곳에 처하는 자가 되어, 세상을 겸손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해야 한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모시고, 전리품으로 의기양양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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