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공주가 갈대 숲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그것을 가져오게 했다. 열어 보니 거기에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그때에 그 아이의 누이가 나서서 바로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다 드릴까요?” 바로의 딸이 대답하였다. “그래, 어서 데려오너라.” 그 소녀가 가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왔다.(출애굽기 2:4-8)
사태는 매우 엄중했다.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는 발견 즉시 강물에 처박히는 즉결처분이었다. 바로의 이 물샐틈없는 경계망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그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바로와 대결하는 일은 무수한 병력을 동원해도 무모한 일이라는 것쯤은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상황적으로 히브리 남자 아이에게 ‘강’은 죽음의 현장이다. 그런데 바로 그 강이 모세를 살린다. 이것은 대단한 역설이다. 바로의 경계망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헛점이었다. 발견하면 강물에 던지기로 되어 있으니 바로 그 강을 통해 히브리 남자 아이를 구해내는 계획이 세워질 리가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지배자들이 알지 못하는 민중의 지혜이다. 뿐인가? 죽음의 자리가 삶의 자리로 변화하는 것은 성서 전체를 일관하는 놀라운 메시지이다. 십자가가 부활을 의미하게 되듯이.
그러나 이 대목은 그런 현장의 섭리적 성격만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생명의 그물망’이 존재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바로의 삼엄한 감시의 눈초리에 맞설 자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 맞서서 생명의 사건을 이루어낸 것은 놀랍게도 그보다 약한 여인들의 눈길이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을 강으로 띄워 보낸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에 맡긴 절박한 이별이었다. 오로지 간절한 기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또는 그와 관계된 자의 눈에만 띄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주시하는 역할이 그의 딸이자, 모세의 누이에게 맡겨진다.
그런데 아기 모세를 담은 상자는 하필이면 바로의 딸에게 발견된다. 발생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실현되는 찰나였다. 이제 모세의 운명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고, 누구도 사태를 뒤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의 딸이 보인 눈길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다. ‘이 아이는 히브리 아기로구나’ 하는 확인 - 그것은 학살명단의 확인일 수 있는 것이다 - 이 바로의 딸이 가진 사랑을 전혀 비틀지 않는다.
한 가지 여기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어떤 범주에 넣어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인가를 성서는 다시금 우리들에게 일깨우고 있다. ‘바로의 딸’이라는 범주가 바로의 딸 그 자체의 인간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서 혹 참고가 될지는 모를지언정,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결론을 내리는 근거가 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바로의 딸이니 분명 히브리 아이에게 이러저러하게 조처를 취할 것이다’라는 상식을 깨고 있다.
아무튼,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모세의 어머니와 딸과, 바로의 딸 간의 ‘생명의 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바로의 경계망이 허물어지게 된 사실이다. 바로의 입장에서는 다른 아이는 몰라도 모세만큼은 제거했어야 하는 일인데, 그 일에 실패해 버리고 만다. 여인들의 눈길이 이루어낸 사랑의 힘을 바로의 철벽도 막아내지 못하고 만 것이었다.
무엇이 생명을 살리는가? 그것은 바로보다 더한 꾀와 계략, 그리고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인간을 깊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눈길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언뜻 보기에는 무력하고 아무런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만 같은 약한 여성들의 마음이 생명을 구하는 일로 결합되자 그 무서운 바로의 힘도 이를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약자를 향한 사랑의 눈길,’ 이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눈길이 아닐까.
인권과 인간적 존엄성조차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이 땅의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노인, 가난한 이들의 삶도 이 힘으로 되살아나지 않겠는가? 실로 이 눈길들이 서로 연대하여, 인간의 생명에 상처를 주고 이를 병들게 하며 죽음으로 몰아가는 힘들에 대항하는 ‘생명(生命)의 전선(戰線)’을 결성, 죽음의 강에 빠져들어가는 뭇생명을 구하는 기쁨이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모세의 어머니가 달려와 죽을지도 몰랐을 아이에게 젖을 먹여 길렀듯이, 이 생명의 연대로 하여 부름받은 이들이 이 사회에 그 은혜의 젖을 먹이는 일에 열정을 쏟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어제, 처음으로 공동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사연을 덧붙인다.
사진/뉴스1
고 김인홍 씨 어머니 ------------------------------------------------------
가슴에 묻고 아들을 (곧 오스트리아 빈으로) 데리고 간다. 아들은 연세어학당에 공부하러 왔다가 이태원에서 희생당했다. 저는 30년을 빈에서 살면서 애들이 외국인으로 외면당하지 않게 키워왔다. 항상 예스와 노를 확실히 가르쳤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그런데) 우리 아들을 보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나라를 이끄시는 분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답답하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왔다. (아들을 데리러 병원에 갔을 때) 사망시간이 틀려서 공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서류가 6일이 걸렸고 사과 한마디가 없어서 아들을 데리고 가서 사과를 받았다. 억울하게 죽은 우리 외국인들도, 저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 힘내셔서 꼭, 꼭, 우리 아이들 억울함을 풀어주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고 이상은 씨 아버지 -----------------------------------------------
26살 꽃다운 나이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하나뿐인 우리딸 이상은의 아빠다. 상은이를 보낸 후 마지막에 우리딸에게 썼던 편지다. 태워서 딸에게 부치려고 했는데 태우지를 못하게 해서 오늘 이렇게 편지를 갖고 왔다.상은아, 잘 가라.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사랑하는 우리딸, 먼저 보낸 미안함에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억장이 무너지는 원통함에 가슴을 치며 통곡해보지만 눈물로 태운 가슴에 갈수록 그리움과 아련함이 가득하구나. 꽃다운 청춘 펼쳐보지도 못하고 별이 되었네. 너희 방 사진 속에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데 꽃내음과 향내음만 가득하구나. 보고 싶구나. 내일 아침 밥 먹자고 하면, 부르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데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구나. 열심히 준비해서 미국 공인회계사 합격해서, 아빠, 나 합격했어 하고 울먹이던 너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너의 핸드폰으로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회사에서 좋은 소식의 문자가 날라왔는데 너는 갈 수가 없구나.네가 태어나서 아빠 가슴에 처음 안겼을 때의 따스함처럼 재가 되어 아직도 식지 않은 따뜻한 너를 가슴에 안고 너를 보내려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네가 살아있을 때 사랑한다고 자주 안아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엄마아빠 너무 걱정하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이승에서 아픔, 슬픔 모두 버리고 힘내서 잘 가거라. 엄마아빠도 힘낼게. 우리 딸이어서 너무 고마웠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딸 상은이를 대신해 절규합니다. 저는 국가에 묻고 싶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하였는지,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한다.
고 이남훈 씨 어머니--------------------------------------------
저는 평범한 엄마로서의 넋두리를 하고 싶다. 저는 이 시간에도 비통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저희 아들의 영정사진 대신 살아 생전 웃고있는 사진을 품고 왔다. 이것이 저희 아들 사망진단서다. 사망 시간도 추정이고 사인도 미상이다. 어떻게 부모가 내 자식이 죽었는데 사인도 시간도 장소도 알지 못하고 내 자식을 어떻게 떠나보냅니까. 어떤 순간에 죽음에 이르렀는지 누군가 도와주어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았는지 이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참사 현장을 보며 무슨 꿍꿍이, 무슨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을 경기도 외곽으로 흩어놓으셨나요. 누가, 무엇이 무서워, 두려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지시를 내린 것인가. 결국은 유가족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흩어놓은 것이 아니냐. 저는 아직도 아들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엄마 배고파요, 하던 아들 목소리만 맴돌고 있다. 아들 핸드폰이 새벽 5시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 알람이 울리더군요. 우리 아들,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하루하루의 삶이었을까요.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줄 알았으면 더 안아주고 더 다독거려 줄 걸, 더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 얼굴 한 번 더 만져줄 걸. 먼저 보낸 미안함에 몸부림친다. 내 아들이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 엄마인 나는 알아야겠다. 저는 아들에게 약속했다. 아들 잘못 아니라고, 아까운 스물아홉의 삶을 지켜주지 못한 이들의 잘못이라고, 이제 넋놓고 눈물만 흘리지 않으려 한다고. 저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날의 진실과 투명한 조사, 그리고 책임 있는 자들의 책임과 사퇴,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를 비롯해 더 이상 우리 아들딸들을 영정사진도 육체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달라는 것이다.우리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게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조사와 사과, 우리 아이들에게 사과하십시오. 책임있는 자들은 책임 지고 대통령은 진실성 있게 공식 사과하십시오.
고 송은지 씨 아버지------------------------------------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달라.이태원 참사는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에 의한 간접 살인이었다. 참사 발생 4시간 전인 오후 6시께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 통제해야 한다, 숨 쉬기가 어렵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신고가 들어왔지만 경찰은 나서지 않았다.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10월29일 이태원 도로 한복판에 국가는 없었다.우리 유가족들은 묻는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풀어버린 행안부 장관, 보고 받은 적 없다고 하는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112 치안종합상황실장 등.우리 아들딸들 생명의 촛불이 꺼져갈 때 뭐하고 있었느냐고 묻고 싶다. 과연 그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었다면 뒷짐지고 어슬렁어슬렁 식당에 가고 부하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긴박한 상황에도 상황실을 비우는 행동은 없었을 것이다.유가족 마음을 헤아려서 소중한 우리 아이들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 달라. 마지막으로 김의곤 시인의 시 한 수 읽겠다.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이태원 173-7
그 좁은 골목길에
꽃조차도 놓지마라
꽃들 포개지도 마라
겹겹이 눌러오는 공포 속에서
뒤로…뒤로…뒤로…
꺼져가는 의식으로 붙들고 있었을
너의 마지막 절규에
꽃잎 한 장도 무거울 것 같아
차마 꽃조차도 미안하구나
얼마나 무서웠겠니 그 밤
얼마나 원통했겠니 그 순간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을 두고
마지막까지 안간힘으로 버티며
살갗을 파고 들었을 네 손톱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구나
304명 생때같은 아이들
하늘의 별로 떠나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너희들을 허망한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의 안일과 무책임이 부끄러워
이젠 슬픔조차도 변명마저도 차마
드러내 보일 수가 없구나
그 골목에 아무것도 놓지마라!
허울 좋은 애도의 꽃도 놓지마라!
안전도 생명도 탐욕이 덮어버린 이 나라에
반성없는 어른들 끝없이 원망케 하라!
그리하여 아이들아 용서하지 마라!
참담한 부끄러움에 울고있는 우리를…
- 김의곤
고 이민아 씨 아버지-------------------------------------
25살 딸을 잃은, 민아의 아버지다. 이번 참사를 보시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함께 슬퍼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 방통대 다니며 낮에는 평범한 직장생활 하던 딸이었다. 지금도 밤이 되면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참사와 관련해 두 가지 말씀을 꼭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기자회견 하게 되었다. 첫째, 먼저 이 비극의 시작은 13만명이 모이는 인파, 군중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13만명이 모이는 행사에 근처에 있던 기동대를 투입하지 못했다는 말은 결국 경찰이 일반시민의 안전이 아니라 시위 관리와 경호 근무에 얼마나 매몰되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규모 인파 운집이 예정되었음에도 미온적인 대처와 개입을 한 행정안전부, 경찰 모두 비난받아야 한다. 둘째, 참사 이후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유족들의 모임 구성, 심리적 안정을 위한 공간 확보도 없었고 사고 발생 경과와 내용, 수습 진행상황, 피해자의 기본적인 권리 안내 등 기본적인 조치조차도 없었다.참사와 관련해 가장 서로 공감할 수 있고 서로 위안받을 수 있는 사람은 유가족이다. 이를 차단한 것과 다름없는 정부의 대처는 비인도적이다. 저는 화장한 아이의 유골을 일단 집으로 데리고 왔다. 유족들끼리 만나 합동봉안당, 추모비라도 의논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겨우 유족 몇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아무 지원 없이 무슨 비밀공작 하듯이 말이다. 국가가, 정부가 왜 이렇게 피해자를 대하는 것이냐.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로 갑론을박하게 만든 것도 결국 유족끼리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족들끼리 모이면 안 되는 것이냐. 반정부세력이라도 되느냐. 정부는 유족들의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얘기에 이제 답해야 한다.
고 이지한 씨 어머니 ----------------------------------------
배우 이지한의 엄마입니다. 지한이와의 추억이 너무 많아 종이에 적을 수 없어 머릿속에 담아왔어요. 2001년 육아 일기장에 너는 별명을 효자라고 지어야 되겠구나라고 썼더군요. 그렇게 그 아이가 착했다. 연줄 하나 없는 집에서 태어나 자기 힘으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그날도 오후 2시에 바지와 와이셔츠를 다려입고 구두끈을 매면서, 엄마, 나 오늘 밥먹고 와야 돼, 다음날 촬영이 있어서 금방 올거야, 그랬다.그런데 아이가 죽었다니요. 믿고싶지 않았고 병원으로 가보았는데 볼이 홀쭉해 가슴이 미어졌다.심장이 눈물로 가득차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가장 힘있는 사람이 대통령 밖에 없겠구나, 그분에게라도 편지를 써보자라고 두서없이 막 적었다.“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10만명의 아이들도 보호할 수 없다면 158명도 구할 수 없다면 5천만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초동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어난 인재이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다. 초동대처만 오후 6시부터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158명의 희생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제가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아들이 제게 이 노래를 불러 마지막 육성을 남겼다. 이렇게 추억이 많다. 아들을 잊을 수 없어 이 자리에 나서게 됐다.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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