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출간한 《말씀 등불 밝히고》는 김기석 목사의 487편의 구약설교와 625편의 신약설교 중에서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책별로 66편의 설교를 편집한 책이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김기석 목사의 글은 언제나 잔잔하면서도 풍요롭다. 그건 참 묘한 경험이다. 침착함 속에 넘치는 열정과 그저 무심한 듯 지나치는 것 같으면서도 깊숙이 응시하는 성찰의 힘을 느끼게 된다.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진 그의 글에는 그의 독서 편련이 묻어나고,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사와 현실에 대한 생각의 무늬들이 그대로 손에 만져진다.
천 백여 편의 설교를 살피면서 편집한 이 책은 예수를 믿는 그의 삶과 성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수행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집이라고 하면, 얼핏 뭔가 어려운 고담준론(高談峻論)이 펼쳐지는 듯하지만 그는 일상에서 삶의 근본을 길어 올리는 탁월한 정신세계를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눈길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대상은 하나도 없다. 그가 응시하는 모든 대상은 새롭게 살아나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그 말은 우리에게 어느새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복음이 된다.
김기석 목사의 설교는 이렇듯 일상의 현실과 성서의 맥락이 서로 만나게 해준다. 그래서 깊고 분명하다. 성서에 충실하면 현실과 멀어지고 현실에만 집중하면 성서적 메시지가 사라질 수 있는 긴장의 중심에서 말씀의 핵심을 잡는다. 그의 설교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고통의 깊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성서의 길을 열어준다.
하여 작은 들풀에서부터 매미의 허물이나 누에고치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찰의 힘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자연 에세이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생명이 자본과 탐욕으로 소멸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명백한 대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 세상 전체가 다 배움의 길로 통하는 학교다.
그렇다면 그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사랑과 비움과 평화다. 그저 이렇게 말하면 너무 뼈대만 앙상하게 언급하는 것 같아 불만이다. 그래서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 다음이다. 우리는 김기석 목사의 글에서 수도자의 마음과 문학의 향기, 그리고 순례자의 시선을 읽게 된다. 아니, 그 안에 자기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도대체가 그는 어느 것 하나도 그저 대하거나 버리는 법이 없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무수한 이야기, 그리고 인문학과 여러 종교의 지혜에 대한 그의 폭넓은 지식과 이해는 한국 기독교의 편협성을 이미 건너 뛰어넘은 이의 삶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는 우주 전체가 우리 안에 하나하나 정돈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목사의 글에서 다른 종교의 경전과 다양한 인문학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녹아드는 것은 경이롭다. 종교학적 논란의 현학적 과시와는 수준이 전혀 다르다. 인류가 함께 고뇌하고 파고들고 발견한 그 모든 깨우침이 도달한 지점에 대한 김기석의 눈길은 곧 우리의 눈길이 된다. 사실 이래야 정작 우리는 예수가 우리로 하여금 이르게 하시려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지혜의 길이 관통하고 있는 정상에 오르는 것은 바로 이렇게 무수한 순례의 경륜에서 나온다. 다름아닌 이것이 김기석의 설교가 갖는 힘이다. 그것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경험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며 그래서 우리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는 그 생명의 영성이 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해준다. 왜 그럴까? 당연하다. 그는 일상의 세계 속에 담겨 있는 하늘을 우리에게 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건 철저하게 예수의 방식이다. 예수는 풀 한 포기, 겨자씨 하나에서도 하늘을 보게 하시지 않았던가?
우리의 삶이 갈수록 팍팍하고, 자본의 논리가 인간을 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고 이웃과 모르는 사람, 또는 원수로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로 빠져들고 있다. 탐욕은 이미 하나의 정상적인 윤리처럼 군림하고, 출세하는 것이 목표가 된 교육에서 이상한 괴물들이 양산되고 있는 판국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별 하나에서 하늘의 마음을 읽는 이는 드물어 가고 제 욕심 차리기 바쁜 세상이 되었다.
그런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까? 김기석은 그렇다고 말한다. 반디는 폭풍이 불어도 빛을 잃지 않으니 말이다. 《말씀 등불 밝히고》는 이 시대를 위한 위로다. 아니, 그 이상이다. 험악한 세상을 아름답게 열어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는 한 수행자의 안내다.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산길에 접어들고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영혼을 위한 순례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가다가 목마르면, 우리 안에 있는 우물에서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리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이 이 시대에 고맙기만 하다.
신앙은 특수한 사건과 경험이 아니고서는 담아낼 수 없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아름다움과 깨우침을 드러내준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눈을 뜨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눈을 감고 살고 있다는 실감을 하게 된다.
일상에 뿌리를 두지 않고 우리는 자랄 수 없으며, 그 일상의 시간 속에서 길러지지 못한 생각과 습관 그리고 성찰은 자연히 뿌리가 얕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상의 자리로 돌아와 성찰의 시간을 익혀나가는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그건 마치 오랜 손맛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된장 맛이며, 그로써 우리의 일상에 건강함이 채워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일상으로 제대로 돌아오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번거롭기만 하다.
이 책에는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데 그 주옥같은 이야기에는 진심이 있고 겸허한 자기 성찰이 있다. 그의 이러한 성찰은 교회, 기독교를 향해서도 가차 없이 쏟아진다.
김기석 목사의 설교를 읽고 있으면 복음의 본래 가치가 회복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오염되지 않고 맑고 경건한 울림으로 이 세상을 일깨우는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복음을 빙자하여 현실에 눈감게 만들고 욕망의 노예 또는 포로가 되게 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무수한 강단이 부르짖고 있는 지점과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한다. 그 눈길이 달라지면서 우리는 복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혁명적 전복성이 뚜렷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김기석 목사의 설교는 그래서 고사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빛과 소금이 되게 하는 말씀의 전범(典範)이 될 만하다. 그건 탁류가 넘치는 강을 뚫고 솟아오르는 맑은 샘물줄기와 같다.
한국교회서 설교자들이 구약(히브리) 성서의 예언자들을 성서 본문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그 까닭은 예언서에 대한 학습에 부족함이 있기도 하지만, 그 내용들이 우리 자신에 대한 거리낌없는 질타가 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이 말씀들과 비춰본다면 그 질타를 이겨낼 교회와 신앙인이 얼마나 될까. 그런 차원에서도 김기석 목사의 설교는 우선 용기 있는 설교다. 그에 더하여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듣게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설교자란 바로 이런 임무에 충실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무수한 설교학이 존재하고 방법론이 설파되지만 정작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귀 있는 자의 귀”다. 그것이 열려야 “입”이 제대로 열리고 눈이 뜨인다. 말하기에 앞서 들음의 겸손, 그것이 그의 설교가 지닌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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