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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호의 '너른마당'

영생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by 한종호 2022. 8. 6.

 

 그러나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마가복음 10:31)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겸허함을 강조한 말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대목은 우선 부자 청년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그는 가진 것으로 보나, 교육수준으로 보나 또는 가정환경이나 그 개인의 성품과 자세로 보나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인격으로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영생에 대한 길을 묻는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의외이다. 왜냐하면 그만한 정도면 누가 보아도 영생의 조건을 이미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의 문답과정에서 우리는 이 부자 청년이 율법의 정도(正道)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로 연소한 청년이 존경할 만한 믿음과 인품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예수께서는 그를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신다. 보기 드문 합격품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세상이 그 청년에게 가장 부럽게 여기는 것이 사실은 영생으로 가는 길에서 그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결정적 약점임을 지적하신다.

 

이보게 청년, 이제 재물과 연을 끊으시게. 그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게.”

 

영생을 질문한 그에게 실상 최고의 우선권은 영생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면서 자리를 뜨고 만다. 재물을 유지하는 일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일보다 앞서기에 그는 영생의 길을 포기하고 돌아서버린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재물을 가진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더욱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들어가기 어려운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성공하고 재물 많은 것이 축복의 징표요, 세상의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판국에 그것이 영생을 가로막고 있다는 선언은 결코 반가운 소리가 아니었다. 제자들은 자신들과 비교해볼 때 어느 면에서도 뛰어나고 존경스러운 청년이 영생과 인연이 없다고한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하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본다. 자기들은 재물이 없으니 합격일까 하는 생각이 들 만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 율법의 모든 것을 지킨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었다. 먹고 살려면 때로 거짓말도 해야 되고, 피치 못하게 속일 때도 있고 없는 살림에 부모님 공양하기가 벅찰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베드로가 돌파구를 연다. ‘다른 것은 그 청년과 비교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한가지만큼은 우리가 자신이 있다는 식의 발언이었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 왔습니다.” 영생의 길에 들어서는 자격을 그래도 예수님, 당신을 따라 다니는 제자들은 획득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인 동시에, 이를 스승의 입으로 직접 확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바로 이 현장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마가복음 1013절 본문의 대목이다. 도대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서 무엇을 보셨길래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한마디로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 희생했다는 것, 고난을 당했다는 것, 그런 것들이 이들에게 이미 기득권이 되고 있음을 목격하신 것이다. 재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이 기득권이 아니다. 재물을 포기했다는 것 또한 배타적 기득권될 수 있음을 우리는 여기서 보게 된다. 부자 청년의 경우와는 또 다른 반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포기가 어느새 어떤 것을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로 내세워지는 순간, 그것은 거꾸로 영생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로 돌변하고 만다는 것을 단호하게 짚어내신다.

 

헌신과 봉사, 투쟁과 고난, 양보와 인내 등은 참으로 아무나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칭찬받기에 족한 행위들이지만, 그런 것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권의 위치를 주는 조건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스스로 주장한다면, 즉시 그 첫째 되는 삶의 모습은 꼴찌가 되는 조건으로 변질한다는 매서운 경고가 여기에 담겨 있다. 가령, 독립항쟁을 한 것이 자기도 모르게 기득권으로 여겨질 때 독립의 영웅들이 비극적으로 타락했고,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고난 받은 이들이 그 고난의 열매를 기득권화시킬 때 무너진 것을 우리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대로 목격하고 있다. 만사를 제쳐놓고 희생적으로 헌신했던 선한 신앙인들이 그 헌신의 삶이 차츰차츰 교회 안의 기득권이 되어서 신앙 공동체에 깊은 상처와 괴로움을 주는 일을 우리는 곧잘 보곤 한다.

 

갖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 선교공동체의 지휘본부가 되었던 초대 제자 공동체가 바로 그러한 배타적 기득권의 향유라는 먼저 되었던 자가 나중 되는 위기에 직면했던 것을 마가는 제자 중의 제자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고백적으로 증언했던 것이다. 잘 참아놓고 그 참은 것을 내세우는 순간, 기껏 마음 넓게 양보해 놓고 양보한 것을 무언가 획득하기 위한 조건으로 삼는 순간, 순수한 뜻으로 겪은 고난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순간,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은 결국 패망하고 만다는 이 말씀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내가 버린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 남과 비교해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기득권의 징표가 된다고 여기는 마음을 일거에 무너뜨리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특히 한국교회의 교권주의적 위계질서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로 전혀 가볍지 않다.

 

움켜쥐고 있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가는 길을 가로막는 기득권이요, 버린 것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영생의 장애일 뿐인 기득권이 될 수 있다는 이 말씀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내리치는 음성으로 들린다면 이 도전은 우리를 마침내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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