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쓴 네 편의 옥중 서신에 대한 김 목사의 설교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보인다. 그 키워드들을 꿰어 보면, 한 신앙인으로서 그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알 수 있다. 먼저, 그의 설교에는 “이웃”, “사회” 혹은 “세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서 은폐된 거짓을 드러내는 한편 따뜻한 눈길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한다. 그는 믿음의 본질이 이 세상 안에서 어떻 게 사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본다. 젊은 시절에 귀에 따갑도록 들었던 루돌프 불트만의 유명한 명제 즉 “신학은 곧 인간학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김 목사는 “일상의 자리야말로 우리 신앙의 진실함을 입증하는 유일한 자리입니다.”(「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는 용기」)라고 말한다. 이 말은 바울 사도가 로마서 12장 1절에서 말한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의 다른 표현이다.
세상 안에서 바르게 산다는 말은 가장 우선적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몸을 낮추어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낌과 존중이 우리 몸에 밸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될 수 있습니다.”(「그 리스도께 하듯이」)라고 결론 짓는다. 그것을 김 목사는 “정성스러움”이 라는 말로 담아낸다. 그것은 한 사람을 그의 절대값으로 대하는 것이고,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당시에 가축 정도로 취급 받던 노예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대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 하듯이」) 우리는 어떤 조건에 있는 사람이든 절대값으로 대해야 한다. 그 사랑은 절대 다수의 삶의 방식과 수단이 되어 버린 허위와 위선과 탐욕과 부정에 대해 “아니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묵인하고 방관하는 것이 아니다. 불의 앞에서는 바른 말을 하는 것이고, 스스로 목소리 를 낼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되어 주는 것이며, 스스로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의 주먹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고난과 박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정의를 따르는 것이다. 그의 설교에서 “진리”와 “자유”라는 말이 또 다른 키워드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복음 8:31-32)라고 말 씀하셨다.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는 내 욕망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유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욕망과 아집의 포로가 된 상태로부터 풀려나는 자유다.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유다.
“날마다 새로운 존재로 창조되기를 갈망하며 사십시오. 매 순간 그 리스도의 평화가 승리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렵더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내려놓으십시오. 언제라도 주님 의 비상소집에 응할 준비를 하고 사십시오. 주님이 찾으실 때 시간 과 물질과 재능을 아낌없이 바치며 사십시오. 그때 우리 속에는 자유의 공간이 넓어질 것입니다. 자유인의 꿈, 이것이 있을 때, 우리는 욕심의 중력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향해 곧장 나아갈 수 있습니다.”(「자유인의 꿈」)
이러한 자유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진리다. 지금 우리는 모든 절대 진리가 부정당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에는 ‘대안 진리’(alternative truth) 혹은 ‘대안 사실’(alternative fact)이라는 말까지 만들어져 유포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절대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김 목사는 절대 진리를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거짓에 대해 진리를 선택해야 하고, 미움에 대해 사랑을 선택해야 하며, 불의에 대해 정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확신하는 만큼 자유는 더 강해지고 깊어진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깊이 접속되는 것”(「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는 용기」, 「사랑과 분별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믿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기도다. 그는 기도를 이렇게 정의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하는 일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고 영원의 빛 속을 거닐게 됩니다. 기도는 마음 내킬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한 깨어 있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이미 우리 속에 현존해 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이면서 주님의 마음과 일치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 는 용기」)
김 목사가 이 세상에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깨어 있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 말씀을 연구하고 설교하는 주된 이유는 깨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만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교자로서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진정한 깨어 있음은 바른 영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빛 맑고 따뜻한 사랑
신학대학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마음에 뭔가 뜨거운 것을 품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빛은 형형했고 눈길은 늘 지평선 너머를 향하는 것 같았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눈빛은 그때 만큼이나 맑고 빛나지만 따뜻한 사랑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팔짱을 끼고 지평선 너머를 응시하던 그의 시선은 여전하나 자주 시선을 낮추어 냄새나고 어두운 곳을 살핀다. 그는 설교자로서 희망을 말하면서도 희망을 좌절시키는 현실로 인해 예레미야의 하나님처럼 끙끙댄다.(《끙끙 앓는 하나님》) 그래서 그의 설교에는 현실에 대한 애도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오는 희망의 정서가 공존한다. 김기석 목사는 교회가 조롱 당하고 복음이 무시 당하는 우리 시 대에 허락된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다. 그의 삶과 글과 말은 광야와 같은 현실을 살면서 길을 찾는 많은 구도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왔다. 그래서 그에게 감사하고 그를 허락한 하나님께 감사한다.
《말씀 등불 밝히고》 중에서
김영봉/와싱톤 사귐의 교회 목사
*끙끙 앓으며 희망을 전하다 https://fzari.tistory.com/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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