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목사의 책 『요나서가 묻는 질문 17』은 흔들리는 이 시대의 모두에게 주어지는 일깨움입니다. 거대한 물고기 뱃속에 삼켜진 한 예언자의 이야기로 유명한 성서 가운데 한 권이 사실은 얼마나 우리의 삶과 밀착해 깊은 질문과 만나게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건 우리 자신의 실존이 추적해 들어가는 삶의 의미만이 아니라 역사의 풍향계를 내다보게 합니다.

고아원 출신이자 가난했던 시절, 그리고 깊은 병(대장암 3기)의 자국이 온몸에 박혀 있는 저자가 요나서를 읽는 방식은 치열하면서도 목숨을 거는 투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은 하나도 가볍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글을 읽는 것이 힘겹다거나 쉽게 다가서기 어렵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런 무게와 깊이가 만들어내는 표현들은 도리어 사뭇 단순하면서도 날카롭고 또한 따뜻합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우리는 회개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내면을 마주할 용기도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서는 자리를 하루하루 좁혀가고 있습니다. 21세기 우리는 평화와 정의조차 각자의 방식으로만 이해하고 자기 확신에 갇힌 요나가 되어갑니다. 편협한 옳음들이 모여 세상을 더 어지럽히고 자기 신념에 잠긴 이들은 타인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바다 한가운데서 우리는 요나처럼 흔들립니다.”
그래서 이건 각자의 좌표를 찾아 항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고단하고 힘겨운 삶에서 도망치다 마주하는 등대이기도 하며 헤매고 있던 숲에서 길을 찾아 방황이 멈춰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가 요나서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성경의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나는 듣노라. 억울한 자의 속삭임도, 말로 다 닿지 못한 눈물도, 기억한다.’ 사람의 귀엔 닿지 않아도, 하나님의 귀에는 머문다. 도피는 은혜의 길이 아니다. 회피는 믿음의 대답이 아니다. 이해되지 않는 명령은 받아들일 이유를 찾지 못하면 따를 의지도 잃게 만든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요? 조원태 목사는 요나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질문의 내면으로 파고듭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불어닥치는 바람과 마주합니다.
”그 바람은 날카로운 창끝처럼 정확했고 한없이 부드러운 연인의 손길처럼 다정했다. 하나님이 숨결로 빚은 바람은 무섭게 흔들었지만, 동시에 꺾이지 않도록 감싸 안았다. 그것은 징벌이 아니라 손짓이었고 책망이 아니라 품어 안음이었다. 바람은 오래 연습한 무용수처럼 자신의 동선을 따라 흔들리지 않고 요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궤적은 오직 하나, 회피할 수 없는 부르심이었다.“
이런 깨우침이 모이고 쌓이고 뿌리를 내려 요나가 갇힌 물고기 뱃속은 감옥이 아니라 새로운 자신의 태어나는 자궁이 됩니다. 이것은 요나의 각성이자 조원태 목사의 각성이며, 독자들의 각성이 됩니다. 이로써 이는 예기치 않았던 자기를 만나는 기쁨이며, 벽이 문이 되고, 절벽이 길이 되는 감격으로 돌아옵니다. 니느웨에 대한 미움에 눌려 있던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는 여정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의 글들은 그런 까닭에 하나의 문학서이며 성찰의 경구를 담아낸 지혜서라는 느낌까지 줍니다. ‘요나서가 묻는 질문 17’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독특한 것은 이 질문들이 모두 조원태 목사의 삶과 직결되어 펼쳐지고 시대의 풍경과 만난다는 점입니다. 그건 이 질문들이 이 책을 읽는 이들의 삶의 자리에 던져지게 되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질문들과 답을 모색하는 과정이 다만 조원태 목사 한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 왜 피하는가? 2. 왜 막으시나? 3. 왜 자려느냐? 4. 왜 그것이 우선인가? 5. 왜 그것이 딜레마인가? 6. 왜 나는 희생해야 하나? 7. 왜 바닥인가? 8. 왜 은혜인가? 9. 왜 사는가? 10. 왜 변화되어야 하는가? 11. 왜 다시 제자리인가? 12. 왜 나는 정당해야만 하나? 13. 왜 성내는가? 14. 왜 구경만 하는가? 15. 왜 기대하지 않는가? 16. 왜 흔들리는가? 17. 왜 아끼는가?
버려짐, 고독, 침묵, 폭력, 병, 좌절 등으로 얽혀진 조원태 목사의 삶에서 요나서는 하나의 지도가 되었습니다. 그 지도를 따라 현실의 길목에서 만나는 질문은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요나는 그 안에서 하나님을 잊고 자신의 말이 옳기를 바랐다. 우리도 닮았다. 도망쳤던 날들, 외면했던 시간, 억지로 따랐던 결정들, 과정이 남긴 상처와 후회가 쌓인 지금 우리는 어떤 장면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나님이 빚으실 생명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내 질서가 옳았음을 증명해 줄 무너짐의 한순간인가.“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신앙을 가진 이들은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흔들리곤 합니다. 자신의 판단과 하나님의 계획 사이에서 그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살던 고아원에는 원생들마다 후원자가 있었고 우리는 언젠가 부자가 와서 나를 입양해 가길 꿈꾸곤 했다. 어느 날 내게 찾아온 후원자는 낡은 옷차림의 아저씨였다. 잠시 실망했지만 그는 나를 재래시장의 국밥집으로 데려갔다. 아저씨는 국밥을 한 그릇만 시켰다. 나는 허겁지겁 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뱃속은 따뜻해졌지만, 마음 한쪽엔 의문이 남았다. 왜 한 그릇뿐일까? 식당 주인에게 값을 치르며 아저씨가 주머니를 뒤져 동전 하나하나를 내밀 때 알았다. 그가 가진 전부가 그 한 그릇이었다. 나는 그날, 아저씨의 전부를 먹은 것이다. 다시는 볼 수 없었던 그 후원자 아저씨,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 그는 국밥 한 그릇으로 이름 없는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조원태 목사는 이 모든 질문의 결말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날의 국밥은 내게 새겨 주었다. 내가 아낌받을 수 있다는 것, 가난 속에서도 자신을 비워 한 아이를 살린 한 그릇, 그 아낌이 오늘도 내 가슴에 남아 하나님의 물음과 겹친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마지막 말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였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말을 잃는다. 논리가 아닌 사랑으로만 이해되는 한 문장 앞에서 말 대신 젖어 드는 마음.“
살길은 이렇게 열리는가 봅니다. 모든 고통과 좌절, 방황과 허무, 의문과 분노를 넘어서는 길 위에 우리가 어떻게 서게 될 것인지, 조원태 목사의 요나서 읽기는 우리에게 17개의 질문을 통과하도록 해줍니다.
조원태 목사의 『요나서가 묻는 질문 17』은 이 시대를 위한 위로입니다. 아니, 그 이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험악한 세상을 아름답게 열어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는 한 수행자의 안내입니다.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요나서에 닻을 내리고 말씀을 따라 침잠해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영혼을 위한 양식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조원태 목사의 책이 이 시대에 고맙기만 합니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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