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랐다. 매일같이 맞았다. 때리는 손보다 더 무서운 건, 숨조차 삼켜버리는 그 공기였다. 말이 사라지고 숨도 납작해지던 시간들. 중학교 2학년 봄,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문을 넘는 순간, 나는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다른 도시에서 나는 붙잡혔다. 나를 붙든 건 누군가의 명령이 아니었다. 누구의 손도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마음이었다. 그해 처음 교편을 잡은, 20대 중반의 여 선생님이었다. 구두는 벗겨졌고 스타킹은 찢어졌는데도, 그분은 한마디 말 없이 나를 따라 언덕을 올랐다. 그날, 그 벼랑 위에서 선생님은 내 손을 붙잡고 울었다. 아무도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던 세상에서, 처음으로 한 사람이 나를 위해 울어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달라졌다. 더는 그렇게 숨고 싶지 않았다. 그 눈물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붙잡히는 것이,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을.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떠나는 사람. 도망치는 단 한걸음에 그의 믿음과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싶었다. 그는 무엇이 두려웠을까? 어떤 상처가 그를 이렇게까지 내몬 걸까?

2022년 봄, 나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대장의 절반을 잘라내야 했다. 수술대 위에 누운 채, 21개의 수술칼이 둥그렇게 나를 에워쌌다. 그 순간, 나는 요나처럼 모든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숨 멎는 고요였다. 수면 주사가 스며드는 찰나,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마치 태초부터 이어진 우주의 맥박 속으로 내가 들어간 듯했다. 눈은 감겼지만, 마음은 또렷했고 귓가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득히 울렸다.
그 속삭임은 내가 16년을 살아온 뉴욕의 거리에서 무뎌진 정의를 다시 외치라는 다급한 울림이었다. 그 말씀에 대한 화답은 추방 위기에 처한 서류 미비자들을 위한 사역이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민자보호교회’로 다시 부르셨다. 깨어났을 때 온몸은 무너져 내렸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시 청명한 숨결이 피어올랐다. 나는 살아 있었다. 요나처럼 육지에 내던져져 멎었던 숨결 위에 다시 깃든 그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은 다그침이 아닌 기다림이었고, 두려움이 아닌 “살아 있으라”는 속삭임이었다. 무너진 삶의 끝에서 다시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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