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오 목사의 건강한 작은 교회 이야기(11)
목사는 목사답게
- 건강한 작은 교회의 직분(2) -
지난 번 글에서 교회 직분을 직분(office)과 직책(position)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번에는 각 직분의 의미와 형성 과정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먼저 ‘목사’라는 호칭부터 생각해 보겠다. 요즘 ‘목사’가 성경에 없는 직분으로 콘스탄틴 대제 이후 교회가 제도화 되면서 권력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성경대로 ‘목자’ 또는 ‘장로’ 등으로 부르거나 심지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 말 성경 <개혁개정>에 ‘목사’라는 호칭이 등장하는 것은 에베소서 4장 11절 단 한 곳 뿐이다. 이 구절에서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라고 했는데 이 때 ‘목사와 교사’는 ‘목사 곧 교사’로 같은 의미로 번역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대체적인 이해이다. 문제는 ‘목사’라는 단어의 원어가 ‘포이멘’이라는 것이다. 포이멘은 ‘양을 치는 사람’으로 ‘목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에 따라 ‘목사’라는 단어는 없고 원래 표기대로 ‘목자’라고 하거나, 사도행전이나 서신서 등에 등장하는 ‘장로’ 또는 ‘감독’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예수님만이 우리의 ‘목자’이시니 목사를 목자라 부르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주장하며 ‘목사’라는 호칭을 폐기하고 그냥 모두를 ‘형제, 자매’로 부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부활 후 예수님은 낙심해 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 “내 어린 양을 먹이고, 치라”고 명하신다. 주님의 양인 성도를 특별히 섬기라는 섬김의 직임을 주신 것이다. 또 베드로전서 5장 1-4절은 장로들에게 양무리를 치되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부탁하며 후에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영광의 관을 얻게 될 것이라 말한다. 장로들에게 양무리를 섬기는 직임을 부여하고, 특히 예수님에 대해 ‘목자장’이라고 하는데 ‘목자장’이 있으면 ‘목자들’도 있는 것으로 예수님은 ‘목자장’이고 섬김의 직임을 맡은 자들은 ‘목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목자’가 양을 치고 섬기는 일을 한자로 ‘목양’(牧羊)이라고 한다. 원래 고대 중국에서 백성을 잘 이끈 뛰어난 관리에게 주어지는 칭호로 ‘목자’ 또는 ‘양치기’라는 뜻으로 ‘목사’(牧師)를 사용했고, 그대로 우리나라 고려, 조선 시대에도 사용했다. ‘목자’의 헬라어 ‘포이멘’을 라틴어가 ‘파스토르’(pastor)로, 영어로 ‘패스터’(pastor)로 번역했다. 라틴어로 영어로 번역할 때도 포이멘의 의미를 그대로 살린 것이다. 우리나라 성경은 중국어를 번역했는데, 목양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중국어 성경이 번역한 ‘목사’(牧師)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목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에서의 ‘목사’가 꼭 비성경적이거나 폐기되어야 할 호칭은 아닌 것이다. 목사에 대한 지나친 권력화나 권위주의화를 염려하는 것은 이해하나 그렇다고 호칭을 없애는 것이 바른 방향인가는 의문이다. 더구나 ‘목사’(牧師)의 ‘師’는 ‘집사’, ‘권사’할 때도 동일한 ‘師’를 사용해 특별성이나 구분됨을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특별하게, 권력적으로, 권위적으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바로 잡으면 될 일이다.
<By Illustrators of the 1897 Bible Pictures and What They Teach Us by Charles Foster , Wikimedia Commons>
초대교회는 ‘장로’, ‘감독’, ‘목자’란 호칭을 혼용해서 사용했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서(사도행전 20:17) 당부하면서, 성령께서 장로들을 양떼들의 ‘감독자’로 세우셨다(사도행전20:28)고 말한다. 또 디도를 그레데 교회에 남겨 둔 이유를 “‘장로’(디도서 1:5)를 세우려 함”이라고 설명하면서 장로를 ‘감독’(디도서 1:7)이라고 칭한다. 베드로는 ‘목자’가 곧 ‘감독’(베드로전서 2:25)이라고 말한다. 요한도 자신을 ‘장로’(요한이서 1:1)라고 소개한다.
이렇게 장로, 감독, 목자(목사)가 혼용되어 사용되다가, 교회 정치 구조나 직임의 역할을 나누면서 목사와 장로로 구분하거나, 감독으로 호칭하였다. 현대 교회에서는 대체적으로 ‘목사’는 교사로서의 역할인 ‘가르치는 장로’, 장로는 ‘다스리는 장로’로 그 역할을 구분하고, ‘감독’은 감리교 등 감독정치를 하는 교파에서 목사들의 목자이거나, 특정 지역(노회나 연회 등)을 대표하는 목사를 의미하여 사용한다.
초대교회는 한 교회나 지역에 다수의 장로, 감독, 목사가 있었고 이들의 직무는 교회를 행정적으로 다스리는 일(디도서 1:7), 교인들을 심방하고 기도하는 일(사도행전 20:28, 베드로전서 5:2, 야고보서 5:14), 교인들을 권면하고 가르치는 일(디모데전서 3:2, 디도서 1:7), 교회를 대표하는 일(사도행전 2017~31) 등이다.
현대 교회에서 장로는 개 교회가 일정 세례교인(대개는 30명~50명)에 1명의 장로를 투표(장로교 등)를 통해 선출하거나 임명(감리교 등) 한다. 이렇게 개 교회에서 투표로 선택된 장로는 노회나 연회 등에서 실시하는 일정 교육이나 고시를 통해 안수하여 정식 시무 장로가 된다. 이렇게 세워진 장로는 엄밀히 말해 개 교회의 장로로 개 교회에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대외적으로 대표한다.
장로의 자격은 디도서1장 5-9절, 디모데전서 3장 2-7절까지의 말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개 교회는 이런 자격에 준하게 장로를 선출하고, 교육시켜야 한다. 장로 직무는 억지로가 아닌 자원함으로 해야 하며, 이득을 위하여 해서는 안 되고, 또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본이 되는 자세로 감당해야 한다(베드로전서 5:2,3). 이런 장로에게 젊은 자들은 순종하고(베드로전서 5:4 데살로니가전서 5:12), 존경할 자로 알아야 하며(디모데전서 5:17) 특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존중하고(디모데전서 5:17) 그 삯을 주어야 한다(디모데전서 5:18, 고린도전서 9:13,14)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목사직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장로직에 대한 무용론과 일정 나이가 넘으면 그냥 예의 상 호칭으로서 부르는 교회까지 생긴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고, 장로가 장로답지 못함에서 시작되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목사와 장로의 ‘어떠함’에 귀 기울이고, 목사와 장로가 ‘무엇’해야 하는 자들인가를 회복해 가르치는 자로, 치리하는 자로 바르게 섬기고 신앙인과 세상 가운데 본이 되는 직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이진오/더함공동체교회 목사, 교회2.0목회자운동 회원
'이진오의 '건강한 작은 교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분 선출은 공정하고 자율적으로 (0) | 2015.05.05 |
---|---|
직분자는 직분자 답게 (0) | 2015.04.28 |
직분(office)과 직책(position) (0) | 2015.04.13 |
민주적 운영이 신본주의다 (0) | 2015.03.31 |
건강한 작은 교회(?) 도대체 몇 명인가? (0) | 2015.03.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