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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십브라와 부아, 목숨 걸고 아이들을 지키다(2)

by 한종호 2015. 6. 4.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1)

 

십브라와 부아, 목숨 걸고 아이들을 지키다(2)

 

 

1.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바로 산파들이었을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일을 도우며 세상 밖으로 나온 그 귀중한 생명을 두 손에 안아든 산파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경건하고 거룩한가.

 

2. 십브라와 부아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그들은 무엇이 옳은지를 알았고,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옳은 일을 했다. 산파들이 하는 일이란 게 생명탄생을 돕는 것이지 생명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바로가 내린 지엄한 명령이라고 해도, 생명을 죽이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었기에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로를 거역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의 역사, 이스라엘 여인들로 하여금 자녀 출산을 통해 어머니가 되게 하는 모정천리의 여정에 참여했다.

 

 

           <Shiphrah and Puah, 출처: Sammy Williams>

 

 

3. 그러면 십브라와 부아라는 산파들이 등장하는 당시 상황을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자. 산파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이 출산, 즉 어머니와 아이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애굽에 내려온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출애굽기 1:7).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기르는 일, 번성하는 일에 열심이었음을 보여준다. 산파들은 이스라엘의 번성, 즉 자녀출산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4. 하지만 바로와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은 이스라엘이 번성하는 모습을 보고 불안해졌다. 그래서 바로는 이스라엘의 번성을 억제할 방침을 시행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중노동에 동원해서 괴롭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갔다(출애굽기 1:12). 이스라엘 여인들이 자녀를 열심히 낳아서 어머니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고난도 모성애를 누를 수는 없었다.

 

5. 강인한 모성애로 인해, 그들이 세운 인구 억제책이 무용지물임이 드러나자, 애굽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적 증가를 억제하면서 그들을 애굽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절묘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 고민한다. 그러다 드디어 그들이 생각하기에 최상의 대책을 발표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산파들로 하여금 바로 죽이게 하는 것이었다.

 

6. 이것은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헤롯이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예수가 태어난 지역 인근의 2살 미만 아이들을 모조리 학살했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이스라엘 모든 가족을 대상으로 남아출산 시 그 아이들을 산파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이게 하는 것은 도를 넘는 잔인무도한 일임에 분명하다.

 

7. 하지만 이 방법도 실패로 끝난다. 당시에 바로는 사람목숨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지닌 절대지존 이었다. 그러나 성경기자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로는 매우 우둔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 이것은 15절에 들어가면서 바로 드러난다. 15절을 보면, 애굽 왕이 산파들을 직접 불러서 엄하게 명령을 한다. 그런데 바로가 내린 이 지엄한 명령은 ‘그러나’라고 하는 접속사에 의해 뒤집어져서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한다. 17절을 다시 읽어보자.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살린지라.” 그러자 바로는 산파들을 불러들여서 추궁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출애굽기 1:18). 그 살벌한 취조에도 불구하고, 산파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출애굽기 1:19). 이런 이유로 산파들은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죽일 수 없었다는 것인데,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들, 애굽 사람들이 얕잡아 봤을 그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건장할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성애가 비교할 수 없는 없을 정도로 강해서, 자기 자식의 생명을 결코 남의 손에 맡기려 하지 않았음을 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8. 히브리 산파들은 바로를 두려워했겠지만, 바로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다. 그래서 애굽 왕이 내린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살렸다. 정말 대단한 여인들이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다. 물론 바로가 추궁할 때 할 핑계를 준비했겠지만, 그것이 통할 리 없을 것이고, 그들은 아마 모진 고초를 당했을 것이다. 그것을 다 알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임을 명하는 바로보다는 살림을 명하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하나님 명령을 더 귀하게 여겼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인가.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성경에 그 이름들이 기록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9. 바로가 내린 명령을 교묘하게 어긴 산파들에게 바로가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본문은 하나님이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인정하셨다는 것이다. 본문기자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그들 집안이 흥왕했다고 증언한다(21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역시 "번성"이다. 이스라엘은 산파들로 인해 번성하고 더욱 강해졌다(20절). 산파들이야말로 이스라엘 번성의 주역이라는 것이다.

 

10. 여기서 보는 대로, 바로가 특별히 세운 대책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무리 괴롭히고 아무리 잔인하게 대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굴하지 않았고, 수도 줄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번성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독자들은 본문을 읽으면서 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백은 십브라와 부아가 보여준 목숨 건 헌신, 모정천리(母情天理)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어머니의 어머니이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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