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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톺아보기

착한 노래가 듣고 싶다

by 한종호 2015. 5. 22.

김기석의 톺아보기(3)

 

착한 노래가 듣고 싶다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재미솔솔 이야기나라’ 수업이 진행되는 방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낭랑한 노랫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풀꽃에까지 눈길을 주고, 기어이 예쁘다고 칭찬까지 하는 그 마음이 다사롭다. 반복되는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들은 ‘이꽃 저꽃 저꽃 이꽃’ 하는 대목에 이를 때마다 곁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으리라. 참 좋다.

 

 

 

 

착한 노래가 착한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 이 시대의 가객 홍순관이 불렀던 노래도 귀에 쟁쟁하게 울려왔다.

 

“왜 국에다 밥 말았어

싫단 말이야 싫단 말이야

이제부터 나한테 물어보고 국에 말아줘

꼭 그래야 돼.”

 

7살짜리 꼬마의 항변이 참 어여쁘다. 수용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부과되는 좋음은 폭력일 수 있음을 아이는 깨우치고 있다. 그 엄마가 열려 마음의 사람이라면 다음부터는 아이의 의사를 묻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으리라. 노래를 들으며 착한 노래가 착한 세상을 만든다는 말을 시인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내 마음도 흙 가슴이 된 듯 넉넉하게 열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교회 가을 운동회 때의 일이다. 운동장 뙤약볕 밑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유치부 개구쟁이 녀석이 지나가고 있었다. 장난삼아 냉큼 들어올렸더니 아이는 싫지 않은 내색이면서도 귀염성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님, 너무 힘쓰지 마세요.”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맹랑한 말에 놀라 “왜?” 하고 물었더니 녀석이 대답했다. “힘을 많이 쓰면 빨리 늙잖아요.” 애정이 담긴 아이의 말은 큰 위안이었다. 꼭 안아주고 땅에 내려놓으니 아이는 환한 미소를 풀어놓고 쪼르르 친구들 속으로 달려갔다.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말의 속뜻을 조금쯤 엿본 느낌이었다.

 

어느 날 밤 프란체스코가 아시시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온 세상이 공중에 떠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문밖으로 나와서 그 위대한 기적을 즐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교회로 달려가 종탑으로 올라가서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사람들은 불이라도 난 줄 알고 옷도 제대로 못 입은 채 교회당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프란체스코를 보고 물었다. “도대체 왜 종을 치는 거요? 무슨 일이라도 났소?” 종탑 꼭대기에서 프란체스코가 대답했다. “여러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하늘에 떠 있는 저 달 좀 보시라고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들려주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의 모습을 본다.

 

풀꽃에 눈길을 주고, 보름달을 마치 기적인양 바라보는 이들이 살기에 세상은 너무 살벌하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세계에서 풀꽃들은 짓밟히고, 권력추구에 발밭은 이들의 충혈된 눈에는 보름달이 보이지 않는다. 자기 확장의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남들과 소통하는 일에 미숙하다. 소통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들을 인정하기 싫거나, 자기 확신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계몽된 영혼이란 자기가 그릇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이다. 어리석다(absurd)는 단어에는 ‘귀머거리’라는 뜻의 사르두스(sardus)라는 말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지도자들은 잘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 할 말만 있고 들을 말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야단치고 윽박질러 주눅들게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생지옥이다.

 

희망조차 없이 휘뚝거리며 살기엔 세상이 너무 척박하다. 그들에게 착한 노래를 불러줄 사람은 누구인가? 아이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욱 그리운 시대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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