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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요게벳, 어머니면서 어머니 아닌 삶을 살다(1)

by 한종호 2015. 6. 13.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2)

 

요게벳, 어머니면서 어머니 아닌 삶을 살다(1)

 

 

1.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모세의 생물학적 어머니이면서 유모로 처신해야 했던 여인. 제 자식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어머니. 제 자식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 그러나 그는 진정한 어머니였다. 모세를 모세답게 만든 사람이 바로 요게벳일 것이기 때문이다.

 

2. 출애굽기 21-10절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본문 기자는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냥 레위 가족 중 한 사람, 레위 여자, 그의 누이, 바로의 딸이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10절에서 모세라는 이름이 나온다. 모세라는 이름은 바로의 딸이 지어준 이름이다. 그녀가 아이 이름을 모세라고 지은 까닭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지은 연유를 밝히는 것은 성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3.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이 아브라함에서 솔로몬에 이르는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법정변론을 하는데, 모세도 언급한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스데반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모세가 애굽 궁전에서 왕자 교육을 받아서, 여러 가지 면, 특히 웅변을 위한 수사학과 행정 능력, 조직 운영 능력, 정보 수집 능력, 전투능력, 이런 것들이 탁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모세에 관한 기록들이 보여주는 것은 모세가 그런 점에서 그다지 탁월하지 못했고, 상당히 무능력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모세가 과연 애굽 궁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4. 애굽 공주가 모세를 나일 강에서 구했지만, 그 아이를 궁으로 데려가서 젖먹이 때부터 왕자로 키운 게 아니다. 어린 시절 모세를 키운 건 생모였다.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출애굽기 2:9-10).

 

5. 모세의 어머니는 요게벳. 요게벳은 주님은 영광이시다는 의미이다. 주님이 최고라는 것이다. 주님을 최고로 삼는 삶이 요게벳의 삶이다. 이것은 중요한 가치관이다. 요게벳은 모세에게 그런 가치관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이 모세에게는 궁궐에서 지낸 세월보다 소중하다.

 

6. 이제 요게벳에 관한 서론적인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요게벳이 모세를 출산하던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출애굽기 1장은 산파들을 통해서 남자 아이를 살해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다음,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남자 아이를 낳으면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22).

 

7. 상황은 더욱 악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일이 참으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자식을 낳아야 하는데, 남자 아이이면 바로 나일 강에 던져서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설마 그랬을까 생각하겠지만, 출애굽기 2장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태어난 남자 아이를 나일 강에 던져서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산모를 비롯해서 온 가족이 얼마나 애간장을 졸였겠는가? 피투성이 아이를 강물에 던져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어쨌든 제 손으로 제 아이를 죽음의 길로 보내야 하는 부모들, 특히 어머니들. 그들에게 그 시절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8. 그런데 바로는 왜 남자 아이를 바로 죽이라고 하지 않고, 나일 강에 던지라고 했을까? 해마다 범람해서 애굽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생명의 강을 왜 애꿎은 아이들 수장지로 삼으려 한 것일까? 혹시 그 아이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바로는 생명을 파괴하는 왕이다. 그리고 애굽을 비옥하게 만드는 나일 강에 아이들을 던지라는 것은 그 스스로 나일 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애굽을 죽음의 땅, 킬링필드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9. 이러한 대립은 십브라와 부아라는 두 여인에 의해서 드러난다. 히브리인들의 산파들인 십브라와 부아는 하나님의 죽음의 하나님이 아니라 생명의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그리고 바로에게 저항한다. 이것은 시민불복종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은 산파들이었고, 산파들은 아이들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는 일을 한다. 십브라와 부아에게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을 자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는 생명의 왕이신 하나님과는 달리 죽음의 왕이다. 출애굽기 1장은 바로가 모든 백성들에게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바로는 나일 강마저도 죽음의 강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일 강을 생명의 강구원의 강으로 만드신다.

 

10. 당시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전반적으로 묘사하던 본문기자는 2장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한다. 한 가족에게 초점을 맞춘다. 레위 지파에 속한 청춘 남녀가 결혼을 한다. 성경기자는 그들 이름을 나중에 밝힌다.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아므람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출애굽기 6:20). 그들은 자식을 낳는다. 아들을 낳으면 바로 나일 강에 던져야 하는 그 묵시적인 상황에서 그들은 아들을 낳았다. 물론 이 아들이 첫째 아이는 아니다. 2장을 읽어보면, 누나 미리암도 있고 형 아론도 있기 때문이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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