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18)
표절, 위태로운 타락
신경숙 표절은 신경숙의 문학정신 실종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 사태는 1. 허와 실을 교묘히 뒤섞어 직조해서 진실을 은폐하는 현실에 둔감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 2. 역사와의 치열한 긴장을 피하고 아편이 되어가는 문학, 교육, 정치의 타락, 3. 탐미주의가 돈이 된다면 극우의 손도 몰래 잡는 지식인들의 감추어진 전향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문학의 소멸 앞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문학 비평가들의 가짜에 대한 전투개시는 단지 문학에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새 권력이 되어버린 이름의 무게와 허위, 시장의 유혹, 정신적 투쟁의 궤멸 상태 등에 대한 새로운 전선 구축과 관련이 되어갈 것이며 그리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과 정치는 사실 바로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어느새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깊고 깊게 고뇌하고 논쟁하는 기력을 잃었으며, 그런 까닭에 그 결과의 하나로 동아시아 격변의 시대 앞에서 무엇을 성찰하고 어떤 진로를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의지를 방치해버리고 있는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가령, 미군의 탄저균 실험에 대한 정치권의 발언 단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은 진실이 얼마나 매일 매 순간 사형집행대 위에 올라서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메르스 확산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져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달아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보다는 도리어 더 심각하게 개별적으로 파편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소중한 것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몸의 생명과 더불어 정신의 생명입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그 안에서 활력을 얻기도 하며, 정신이 힘차야 몸도 그 정신의 요구에 따른 삶을 살아가게 해줄 것입니다.
진실에 대한 발언의 의지는 거짓에 대한 단호한 자세와 하나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경계선에서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를 집단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역사를 참으로 깊이 알려면 비지땀이 흐르는 된 마음(여기서 ‘된’은 ‘무척 강한’ 또는 ‘힘을 들인’의 뜻)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비지땀이 흐르는 마음의 활동, 이걸 업수히여기고 사는 인간과 사회는 표절이 아무렇지 않고, 아편장사가 매력적이며 극우의 탐미주의도 서슴지 않고 자기 상품으로 만듭니다.
이건 실로 위태로운 타락일 뿐입니다.
김민웅/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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