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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어부사시가”의 즐거움

by 한종호 2015. 7. 5.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0)

 

“어부사시가”의 즐거움

 

 

윤선도의 “어부사시가”의 여름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궂은 비 멈추고 시냇물 맑아 온다

낚싯대를 둘러매니 깊고 깊은 흥겨움 금할 길이 없구나

안개가 자욱한 강은 누가 그려 냈는가

 

연잎에 밥 싸두고 반찬일랑은 장만하지 마라

대삿갓을 쓰고 있다, 도롱이를 가져왔느냐?

무심한 갈매기야, 내가 저를 쫓아가는가, 아니면 저가 나를 쫓아오는가?

 

물결이 흐리다고 그에 발을 씻은 듯 어떠하리

오강을 찾아가려하니 천년의 노여움이 슬프구나

두어라 초강으로 가자하니 고기 뱃속의 충혼으로 사라진 굴원의 넋을 낚을까 두렵구나”

 

주위의 풍경을 가만히 응시해보면 아무런 풍파도 없고 다만 비가 내린 후 해가 떠오를 뿐입니다. 하여 어부는 흥겨움에 몸을 들썩거리며 어깨에 낚싯대를 훌쩍 둘러매고 길을 나섭니다. 그의 마음은 어느새 벌써 강가로 달려가고 그의 발걸음은 이내 고기를 가득 낚아 돌아오는 기쁨에 가볍습니다. 멀리 보이는 강은 그림처럼 안개로 덮였고 그 안에 속할 자신의 모습은 생각만 하여도 절로 흥이 나는 것입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연잎에 싼 밥을 챙겨 먹을 생각을 하니, 그에게는 굳이 무슨 반찬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필요한 것은 뜨거운 햇볕을 가릴 삿갓과 비를 맞아도 괜찮을 짚으로 만든 도롱이뿐입니다. 세상은 고요하고 어부의 마음은 평정해집니다. 때로 찌가 움직거릴 때마다 손에 느껴지는 생명의 펄떡임이 그의 육신을 새롭게 긴장시키고 흥분에 몰아넣습니다.

 

 

 

 

문득 고개를 드니, 갈매기가 하늘에 날렵하게 선을 그어 지나가고, 그의 눈길도 그 자취를 쫒아가니 그 와중에 누가 누구를 쫓아 나는지 알 수 없는 뒤엉킴이 있습니다. 몸은 강가에 있으나 그의 마음은 하늘을 향해서도 비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강물은 생각보다 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부는 즐겁습니다. 발을 물에 담그고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니 만사에 근심이 사라지고 씻겨가는 듯 합니다.

 

조정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상소를 올렸지만 돌아온 것은 유배의 징벌이었습니다. 고산 윤도선의 어부사시가는 유배의 땅에서 읊은 그의 한탄스러운 심사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에는 그 어떤 분노나 원한도 엿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의 숨결에 그의 육신과 마음을 그대로 담그고 세월의 평안은 비는 격조 높은 기원만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의 충심을 몰라주는 임금과 조정, 그의 뜻을 외면하는 세상, 그리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은 곳에서 고산은 쓸쓸한 심정을 홀로 위로하는 자가 아니라, 강가에 마음을 탁 트이게 열고 조금의 동요도 없이 춘하추동의 계절 앞에서 관조의 여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각박해져가는 세상에서 기를 쓰고 자신을 내세우며 그러다가 좌초하여 스러지는 그런 피곤한 반복이 아니라,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세상에 대하여 깊고 넓은 마음을 품는 시간을 갖는 그런 모습이 바로 윤선도의 품격을 이루어낸 힘이 아닌가 합니다. 바로 이러한 그의 마음 다스리기와 자세가 오늘날 온갖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한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듯 합니다.

 

윤선도의 시 대로 궂은 비가 와도 이윽고 시냇물이 맑아오는 법입니다. 어느 날은 흐리고 어느 날은 개이는 것입니다. 강 위에 안개가 뒤덮여도 그것이 곧 강의 아름다움을 근본적으로 가릴 수는 없습니다. 강의 흐름을 막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을 마르게 하지도 못합니다.

 

소박하게 연잎으로 싼 밥이 가난한 생활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찬이 없다고 그 식탁이 빈한한 살림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소탈하게 도롱이를 입고 보기에 혹 초라한 삿갓을 쓰고 있다 해도 그 마음이 세상을 그득 담고 있다면 그로써 현실을 새롭게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솟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자신이 세운 목표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어떤 순간에도 세상을 돌파해나가는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어떤 계곡에 서 있게 된다 해도 땅을 딛고 선 발에서 힘이 빠져나가지 않는 그런 존재로 되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를 몰아치는 운명에서 구하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윤선도가 자신의 뜻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하여 탄식만 하고 울분을 마음에 쌓아두고 있기만 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그 어느 것도 보람 있게 낚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배된 땅에서도 그는 그의 심중 깊이 남아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어부사시가”를 노래하며 맑은 세상을 향해 가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메르스’라고 하는 전염병으로 인해 삶이 굴곡지고, 이런 와중에 정쟁에 휩싸여 백성들의 아픔은 아랑곳 하지 않는 정치권, 이런 저런 형국을 생각하면 때로 짜증이 나거나 힘겨운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맑은 날은 오는 법입니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 금세 낙담하지도 말며 한걸음 한걸음 단단하게 옮겨나가는 이에게 운명은 그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을까 합니다. 여름 철 비가 후루룩 내리고 나서 개인 하늘이 우리의 마음 그 자체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민웅/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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