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6)
애굽의 어머니들, 그들도 어머니였다(1)
1.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다”(출애굽기 12:30). “부르짖음”은 울부짖음이다. 울부짖음은 절규(絶叫)이다. 그리고 그냥 부르짖음이 아니라 큰 부르짖음이란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울부짖는가? 울부짖음의 주체가 누구인가? 원래 애굽에 부르짖음이 있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출애굽기 2:23-24). 성경기자는 갓 낳은 아들을 나일 강에 던져야 했던 어머니들의 부르짖음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 울부짖음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것과 견줄 만한 울부짖음을 들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울부짖는가?
2. 하나님은 애굽에 일곱째 재앙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출애굽기 9:14). 하나님이 애굽에 재앙을 내린 까닭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바로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15,16절).
3.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이 애굽에 재앙을 내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애굽을 잔혹하게 대한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애굽 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만약 하나님이 애굽 사람들을 강하게 쳤다면, 그들 가운데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바로 역시 왕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단다. 바로와 그 백성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고, 그들이 보이는 완악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애굽 사람들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는 재앙의 강도가 일정하지 않고 들쭉날쭉하고 애굽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도 않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4. 이것이 하나님 뜻인데, 바로는 그것을 모르고, 제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재앙의 강도를 한층 높이겠다고 경고하신다. “내일 이맘때쯤 내가 무거운 우박을 내리리니 애굽 나라가 세워진 그 날로부터 지금까지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18절).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실 일곱째 재앙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5. 그런데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려면 즉각 재앙을 내리실 일이지, 왜 만 하루("내일 이맘때쯤")의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것일까?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마음 약한 분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애굽에게 그렇게 경고하시고, 일정한 시간, 즉 회개할 시간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6. 하나님은 왜 단 번에 바로를 꺾지 않고, 열 번째 겨루기까지 하셨을까?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역사는 점차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단 번에 모든 것을 다 뒤엎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다. 씨앗을 심고 그 다음날 열매를 따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듯이, 하나님 역사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겨자씨가 나무가 되는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우리에게 들려주는데, 겨자씨가 갑자기 나무가 된 기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겨자씨는 일반적인 과정을 나무로 자란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서서히 이뤄진다는 것이다.
7. 그래서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출애굽 시키시는 것이다. 너무 더뎌서 속이 터질 듯 답답해도,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신다. 그리고 이제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것이다. 대책 없이 일을 벌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치밀하게 일을 계획하시고, 하나하나 섬세하게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신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 뜻을 이루시고야 만다.
8.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바로가 뜻을 꺾을 것인지를 이미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그 방법을 단번에 사용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바로와 애굽 사람들을 괴롭히셨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자신을 알리려 하셨다. 그래서 아홉 가지 재앙은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벌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아홉 번의 기회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을 수 있는 아홉 번의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바로는 그 기회들을 모두 놓쳐버렸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단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9. 모세는 바로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은 그날 밤에 자신이 직접 애굽으로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친히 마지막 재앙을 실행하시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신다. 그런 다음 마지막 재앙이 무엇인지 바로에게 알려주신다. 마지막 재앙은 애굽 사람들의 모든 장자들, 그리고 가축들의 첫 새끼를 모두 죽이는 것이다.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일순간에 다 죽임을 당하면, 애굽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애굽은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출애굽기 11:6)으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10. 하나님은 이렇게 마지막 재앙을 예고하시면서, 그 재앙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결코 임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출애굽기 11:7).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 사람을 구분하시고, 즉 이스라엘 사람들을 특별하게 대하시고,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재앙이 미치지 못하게 하셨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이제 애굽의 부르짖음으로 바뀐다. 그것은 자식을 잃은 모든 어머니들의 부르짖음이다. 어머니들이 대성통곡한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교수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모(産母)의 권리, 그 시대가 우리보다 나았다(1) (0) | 2015.07.23 |
---|---|
애굽의 어머니들, 그들도 어머니였다(2) (0) | 2015.07.17 |
십보라, 기지(機智)로 남편을 살리다(2) (0) | 2015.07.04 |
십보라, 기지(機智)로 남편을 살리다(1) (0) | 2015.06.26 |
요게벳, 어머니면서 어머니 아닌 삶을 살다(2) (0) | 2015.06.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