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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십보라, 기지(機智)로 남편을 살리다(2)

by 한종호 2015. 7. 4.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5)

 

십보라, 기지(機智)로 남편을 살리다(2)

 

 

1. 도망자 모세. 그는 미디안으로 와서, 어느 날 한 마을에 들어가, 우물곁에 앉아있었다(출애굽기 2:15). “우물가의 여인"이 아니라 "우물가의 모세"이다. 모세가 우물가에 앉았다는 것은, 한낮에 우물로 물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이 실제로는 영적으로 목말라했던 것처럼, 우물가에 앉아 있는 모세도 무엇인가에 목말라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모세의 목마름.

 

2. 그런데 성경기자는 갑작스럽게 미디안의 제사장에게 딸이 일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출애굽기 2:16). 미디안의 한 딸 부잣집 이야기이다. 미디안 제사장에게 딸이 일곱이 있다는 이 엉뚱한 말돌림이 "최진사댁에 딸이 셋 있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노래처럼, 그리고 그 노래의 결말처럼, 결혼 이야기로 이어질 것을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모세가 우물가에 앉아있는데,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들이 물을 긷기 위해, 그리고 양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그곳에 온다. 하지만 그곳 목자들이 그들을 방해한다. 그런데 18(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을 보면,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났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자들이 여자를 얼마나 무시하고 못살게 구는가. 물론 그 이면에는 여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여자를 무시하는 성향이 강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3. 이것을 지켜보던 모세가 목자들을 내치고 일곱 여인들이 물을 긷고 양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데 19절을 보면, 모세가 목자들을 내치고 일곱 여인들로 하여금 물을 긷고 양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 자신이 직접 양들에게 물을 먹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나 멋진 로맨틱 가이 인가. 그리고 이 이야기야 말로 결혼 이야기의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장면이다. 불량배들이 나타나서 여자를 괴롭히면, 백마 탄 왕자가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을 물리치고 여자를 구해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고, 자식들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산다. 모세도 이 전형적인 이야기 순서를 따른다. 물론 성경기자는 모세와 십보라가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4. 일곱 여인들은 물을 긷고 양들에게 물을 먹인 다음,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를 "애굽 사람"이라고 한다.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떼에 먹였나이다(19). 이것은 모세가 앞으로 할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하고, 그리고 물이 없어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마시게 해준다.

 

5. 이야기를 들은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은 모세를 그냥 두고 온 딸들을 야단친다. 그리고 모세를 데려와서 음식을 대접하라고 말한다. 초청을 받은 모세는 르우엘의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그들과 함께 거한다. 여기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르우엘이 딸부자였을 뿐만 아니라, 아들이 없거나 아니면 어렸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세를 아들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르우엘은 그런 제안을 모세에게 했을 것이고,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할 모세는 그 청을 받아들여서 르우엘의 집에 거하기로 했을 것이다. 르우엘은 모세와 딸 십보라를 결혼케 해서, 모세가 미디안에 정착하게 한다. 첫딸이어서 모세에게 준 것인지 아니면 모세가 십보라를 사랑해서 요청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모세는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낫는다. 모세는 첫째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짓는데, 그 뜻은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이다. 이것은 정처 없는 떠돌이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잘 표현한 이름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머니인 십보라가 하는 일은 그냥 아들을 출산하는 것뿐이었다. 둘째 아들인 엘리에셀을 낳았을 때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의미로 모세가 아들 이름을 지었다(출애굽기 18:4). 모든 게 모세에게 종속되어 있는 느낌이다.

 

6. 불붙은 떨기나무를 통해 소명을 받은 모세는 집으로 돌아와서 장인인 이드로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돌아간다(출애굽기 4:20).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다. 이 하나님의 지팡이는 모세에게 큰 힘과 위로를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겪을 수많은 어려움들을 이기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세가 하는 일이 모세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항상 일깨워 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모세가 아내인 십보라와 상의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모세는 아내와 아이들을 장인에게 보내고,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이후,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시내산에 머무는 모세에게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다 준다(18:2-7). 이 모든 일에서 십보라는 침묵한다. 그러나 모세는 아이들 이름만 지어주었을 뿐, 그 아이들을 키운 것은 십보라였음이 분명하다. 십보라는 남편과 떨어져 아내의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그만큼 어머니로서 두 아들을 키우는 데 전념했다는 것이다. 십보라의 침묵은 결코 무기력한 침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7. 그러한 모습은 출애굽기 424-26절에서 드러난다. 글 전개 측면에서 보면, 24-26절은 약간 뜬금없는 느낌을 갖게 한다. 23절은 27절로 이어지는 것이 더 나은 글 흐름이다. 모세가 애굽으로 가서 아론을 만나는 것이 글 전개상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24절에서 26절이 이 흐름을 끊어 놓는다. 그래서 글 읽기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8. 그리고 24-26절에서 언급한 사건 역시 이해하기 쉽지 않다. 모세 일가족이 애굽으로 가는 도중에 어느 곳에서 장막을 치고 머무는데, 여호와께서 거기서 느닷없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다. 그러자 아내인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아들의 양피를 베어서 모세 발 앞에 가져다 놓고,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남편이다고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를 놓아준다. 그리고 서술자는 십보라가 모세를 피남편이라고 한 까닭이 할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9.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분명한 사실은 모세가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고, 십보라가 아들 양피를 베어서 모세 발 앞에 놓자 모세가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세는 십보라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우리는 십보라가 어떻게 그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비방(秘方)을 알았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십보라가 매우 위급한 상황에서 지혜롭게 핵심을 파악해서 대처함으로써,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넘기고 남편의 생명을 구했다. 남편 모세뿐만 아니라, 앞으로 출애굽의 지도자로 설 모세를 살렸다는 점에서 십보라는 애굽 공주가 나일 강에서 모세를 구한 것과 동일한 역할, 어머니 역할을 한 것이다.

 

10. 모세는 애굽에 가기 전부터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정작 애굽에는 그동안 모세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데, 모세는 애굽에 들어가기 전에 죽을 지경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아내 십보라의 기지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력을 되찾은 모세는 다시 애굽으로 향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모세는 마음을 더 다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게 십보라 덕분이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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