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골리앗을 죽였을까?

  • 목사님 멋있는 해셕입니다.제가 생각하고있는것과 조금 다르긴하지만요..적어도 교활하고 우매한 백성을 속인 다윗이라고 생각합니다.장형엘리압이 평소의 다윗을 가장잘아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움직이지도 제대로 못하는 sitting duck 인 골리앗을 잡은것이지요.비록 다른 자들은 겁을 먹었고 다윗은 골리앗을 정확히 파락했고요.정치적으로 하나님을 파는 말도 덧 붙여서요

    황상호 2015.07.22 08:45
    • 황상호 님, 물론 다윗에게 그런 면이 없는 게 아니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보기엔 그는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란 게 제 생각입니다. 그 복잡한 면을 뒤져보려는 게 이 글의 목적이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곽건용 2015.07.24 03:39 DEL
  • 곽목사님,

    역시나 입니다.

    목사님의 깊은성찰과 고민은 그냥 얻어 진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윗이야기가 더 궁금하고 기다려 집니다.

    올초에 한국에 갔다가, 부모님이랑 같이 처음으로 미국에 왔었습니다.

    부모님, 아내,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 설교를 할수 있는 귀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편내용 가지고, "행복"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었습니다.

    목사님의 시편설교 (131 ?)도 참고했고, 여러 시편 주석들을 공부할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특히 Mowinckel (the psalm in Israel's worship) 을 읽으면서, 시편이 단순한 개인 시편 들이 아닌 예배를 위한 집단 시 라는 사실을 알면서 새롭게 시편을 보았고,

    다윗위주의 시편해석에서 벗어 날수 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알게 된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Rilke 2015.07.23 06:46
    • 릴케님, 오랜만입니다. ^^ 늘 생각하는 거지만 자연과학을 공부하신 분이 이번엔 모빙켈을 읽으셨다니… 놀랍기도 하고 쫄리기도 합니다. ^^ 모빙켈의 책을 오래 전에 쓰였지만 고전적 가치가 있는 책이죠. 시편의 양식비평적 연구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요. 그가 쓴 HE THAT COMES는 구약의 메이야 연구서죠.

      시편은 역사적으로는 다윗과 별 상관 없습니다. 전통이 그렇게 만들었죠.

      올초에 한국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

      저도 릴케 님을 온라인 상으로나마 알게 된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

      곽건용 2015.07.24 03:44 DEL
  • 1.블레셋의 기원을 가나안에서 자생한 민족으로 보지 않습니다. 블레셋은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도망나온 사람들로 이해됩니다. 역사자료에도 이집트에 먼저 갔다가 패한 후에 지금의 블레셋 지역에 정착하죠. 그래서 해양민족이며 철기문화(힛타이트 지역)를 갖고 있습니다. 2.다윗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20세기에 성서고고학에서 유물을 발견했기에 팩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3.칠십인역은 유대인의 자발적 번역이 아니고 헬레니즘 안에 품기 위한 작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삭제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여디디야 2021.02.07 03:42

다윗 이야기(4)

누가 골리앗을 죽였을까?

– 영웅 신화의 탄생 -

 

1.

 

‘여는 글’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우리가 다윗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구약성서에서 왔다. 이 정도로 유명하고 영향력 큰 인물이라면 구약성서 말고도 기록이 남아 있을 법 한데 그렇지 않다. 구약성서 이야기의 역사성에 대해 회의적인 학자들이 다윗 이야기의 역사성에 특히 회의적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상세한 기록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지나가듯이 어느 정도는 언급돼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반면 구약성서 이야기의 역사성에 회의적인 학자들 중에 오히려 다윗을 역사적 인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조얼 베이든(Joel Baden)이 그런 사람이다(Joel Baden, The Historical David: The Real Life of an Invented Hero, 45). 그는 다윗 이야기 전체가 일종의 ‘해명’ 또는 ‘변명’(apology)할 목적으로 기록됐다고 보는데 이 정도로 강력한 해명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실존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한다. 일종의 역발상인데 어떤가? 그럴듯하지 않나?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이야기는 다윗 이야기는 물론, 구약성서 전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다윗에게 출세길을 열어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다윗 이야기 전체의 역사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는 개연성이 낮은 대목도 여러 곳이고 양립할 수 없이 모순되는 대목도 있다. 게다가 칠십인역 성서(그리스어 구약성서, Septuagint 또는 LXX)에는 골리앗 얘기 중 일부가 빠져 있다. 거기에는 사무엘상 17장 1-11절, 31-49절, 51-54절만 있다. 왜 그럴까? 칠십인역은 다윗을 낮추려는 경향을 갖고 있는 책이 아니다. 그에게 불리한 이야기들만 모아놓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왜 칠십인역 성서는 다윗의 명성에 보탬이 되는 대목들을 빼놓았을까? 학자들은 칠십인역이 그걸 삭제한 게 아니라 칠십인역의 히브리어 원본에 그게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학자들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다윗 전승 가운데 비교적 후대에 속한다고 여긴다. 칠십인역 성서에 이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증거이고 그 밖에도 이 이야기에 영웅설화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과 다윗이 사울에게 두 번째로 소개된다는 점 등이 또 다른 증거로 제시된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기 전에 이미 수금 타는 악사로 사울 궁전에 취직했다(사무엘상 16:14-23, 이하 책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면 사무엘상에서 온 구절이다). 사울은 다윗을 매우 사랑해서 자기 무기를 들고 다니는 직무까지 맡겼단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골리앗)을 맞서려고 나가는 것은 보고 군사령관에게 아브넬 장군, 저 소년은 누구의 아들이요?”라고 물었다(17:55).

 

이게 무슨 말인가? 말이 되는가? 바로 앞장에서 사울은 수금 타며 자길 섬기는 다윗이 맘에 들어 그를 사랑하게까지 됐다고 했는데 여기서 “그가 누구냐?”고 묻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궁전에서는 기억나는데 전쟁터에서는 기억이 안 났나? 이것도 야훼가 보낸 악한 영 때문이었을까? 이 모순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나중에 삽입됐고 그 이야기 저자는 다윗이 악사가 되어 사울을 섬겼다는 이야기를 몰랐다고 보는 걸 게다. 그렇게 되면 두 이야기를 연결한 편집자의 편집 실력이 의심받게 되겠지만 말이다. 편집자는 눈에 띠는 모순을 보지 못했을까? 아니면 나름 의도가 있어서 불일치를 알면서도 그대로 뒀을까? 그렇다면 그 ‘나름의’ 의도란 게 무엇이었을까?

 

2.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과정을 짚어보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려고 에베스담임에 진을 쳤기에 사울도 군인을 모아 엘라 평지에 진을 쳤다. 두 군대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맞섰다는 거다. 곧 전투가 벌어질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보인다. 이때 블레셋에서 저 유명한 골리앗이 나와서 싸움을 걸었는데 여기도 이상한 점들이 여럿 있다.

 

우선 히브리 성서가 전하는 그의 키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었다고 하니(17:4) 환산하면 3미터가 넘는다. 이게 사람의 키일 수는 없다. 성서의 진술은 무조건 사실이라고 믿어야 한다면 그런 사람과 논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칠십인역 성서와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사본 사무엘서에는 여섯 규빗 한 뼘이 아니라 네 규빗 한 뼘이라고 적혀 있다. 환산하면 1미터 80센티 조금 넘는 정도니 당시 기준으로 큰 키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칠십인역 성서 번역자와 사해사본 저자도 여섯 규빗은 비현실적이라고 본 모양이다.

 

다음은 골리앗의 차림새다. 일반 독자는 머리에는 놋으로 만든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갑옷을 입고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 어깨에도 역시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는 묘사를 그러려니 하고 읽겠지만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골리앗의 차림새가 다윗 시대보다 훨씬 후대에 중동지역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군장이란다(McKenzie, King David: A Biography, 71). 골리앗이 감히 상대할 수 없이 막강한 장수임을 보여주기 위한 과장이라는 거다. 물론 이 묘사는 지나치게 무거운 골리앗의 장비를 홀가분하게 무릿매만 갖고 싸움에 임했던 다윗과 비교할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다가 저자는 자기 시대가 훨씬 후대임을 잠시 망각했던 걸까?

 

다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전투방법이다. 골리앗은 무거운 군장을 갖추고 나와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이렇게 고함을 쳤다. “너희는 어쩌자고 나와서 전열을 갖추었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고 너희는 사울의 종들이 아니냐? 너희는 내 앞에 나설 만한 사람을 하나 뽑아서 나에게 보내어라. 그가 나를 쳐 죽여 이기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다. 그러나 내가 그를 쳐 죽여 이기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서 우리를 섬겨야 한다”(8-9절).

 

일대일 대결에서 이기는 편이 전쟁에서 승리한 걸로 하자는 얘기다. 이런 게 만화에선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도 그랬을까? 어떤 학자에 의하면 그리스에선 이런 방식의 전투가 있었다고 하는데 설령 그렇다 해도 다윗 이야기의 무대는 그리스에서 멀리 떨어진 가나안이다. 가나안에선 이런 식으로 전투했다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유례가 없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꾸며낸 것으로 보는 건 옳지 않다. 유례가 없다고 절대 벌어지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이상하고 낮선 것뿐이다.

 

골리앗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나? 지는 편이 이기는 편의 종이 되어 섬기자는 제안 말이다. 텍스트는 그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 말에 놀라서 떨기만 했다고 한다(11절). 그러다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자 블레셋 군인들은 모두 달아났고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은 도망치는 블레셋 군인들을 쫓아가서 마구 죽여 시체가 사아라임과 가드와 에그론(모두 블레셋의 도시들)에 이르기까지 온 길에 널렸다”는 거다(51-52절). 사무엘상 17장의 무려 쉰여덟 절이 전하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다. 이걸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승리라고 불러야 하나? 정말 그런가?

 

“드디어 그 블레셋 사람이 몸을 움직여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48-49절). 왜 골리앗을 줄곧 ‘그 블레셋 사람’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한데 그 이유를 알 도리 없으니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다윗과 골리앗이 벌인 전투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위에 인용한 51절 이하는 일방적인 살육에 대한 얘기이므로 본격적인 전투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텍스트는 다윗의 동작을 ‘달려가다’ ‘(돌을) 들다’ ‘(팔매질) 하다’ ‘(골리앗을) 치다’라는 네 개의 동사로 표현했는데 골리앗은 그래서 ‘쓰러졌다.’ 다윗의 네 가지 단호한 행위는 골리앗의 말을 듣고 놀라서 떨기만 했다는 사울과 이스라엘 군인들의 그것(11절)과 대조적이다. 한쪽은 두려워 떨기만 하는데 다른 쪽은 단호하기가 이를 데 없다.

 

 




<David and Goliath - Guillaume Courtois, Wikimedia Commons>



 

3.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전하는 텍스트를 잘 읽어보면 무엇으로 싸움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이들은 무기가 아닌 세 치 혀로 싸웠다고 보는 게 진실에 가깝다. 실제적인 전투행위는 쉰여덟 절 중에 오직 두 절에 전해진다. 그러니 이젠 둘이 혀로 벌인 싸움을 살펴볼 차례다. 이 싸움 역시 다윗이 골리앗에게 완승을 거뒀는데 그 전에 다윗은 동족과 오픈게임을 치렀다. 그럼 오픈게임부터 살펴보자.

 

설화자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다윗과 그의 집안을 소개한다. 앞에서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이미 소개했는데 말이다(16:1-13). 설화자는 다윗의 고향(유다 땅 베들레헴), 족보(에브랏 사람 이새의 아들), 그리고 형제들(엘리압, 아비나답, 삼마를 비롯한 일곱 형제들)을 소개한 후 위로 형 셋이 사울을 따라 블레셋과의 싸움터에 나갔다고 말한다(12-13절). 막내 다윗은 어려서인지 싸움터엔 나가지 않고 아버지의 양떼를 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라는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블레셋과의 전투가 벌어지는(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치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이새는 세 아들의 안부가 염려됐다. 다윗은 형들의 도시락을 들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엘라 평지로 갔다.

 

다윗은 거기서 놀라운 말을 듣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가 형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골리앗이 블레셋 군대 선두에 서서 앞에서 한 말을 반복하면서 싸움을 걸더라는 거다. 이스라엘 군대에서 자기를 상대할 대표선수 하나를 내보내 싸워 이긴 편이 진 편을 종으로 삼자는 얘기 말이다(8-9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서워 달아났는데 다윗은 그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크게 분노했다.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많은 상을 주고 그를 사위 삼겠다고 사울의 제안도 다윗의 귀에 들어오진 않았을 터이다. “저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이 받는 치욕을 씻어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준다구요?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26절)라는 말에 그의 분노가 묻어나 있다. 다윗에겐 골리앗의 말이 이스라엘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었던 거다.

 

여기서 큰형 엘리압이 막내 다윗을 꾸짖었다.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들판에 있는 몇 마리도 안 되는 양은 누구에게 떠맡겨 놓았느냐?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네가 전쟁 구경을 하려고 내려온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28절). 아무라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지만 설마 다윗이 싸움 구경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겠나. 다윗이 건방지고 고집 세다는 형의 말에 어느 정도의 진실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가 다윗을 아주 얕보고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장남의 막내에 대한 안하무인 식의 멸시였을까? 막내 주제에 감히 어른들 얘기에 끼어든 게 건방져 보였나? 그런데 다윗도 물러서지 않고 대꾸했단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는 겁니까? 물어 보지도 못합니까?”(29절)라고 말이다.

 

누군가가 다윗이 한 말을 사울에게 전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불렀다. 그는 왕 앞에서도 당당하게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32절)라고 말했다. 이런 다윗이 사울 눈에도 당돌했나 보다. 그는 다윗을 말렸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골리앗을 어린 소년 다윗이 무슨 수로 이기겠냐면서 말이다. 그러자 다윗은 전쟁터에서의 싸움을 양치는 일에 비유해서 말했다. 사자나 곰이 양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그는 곧바로 쫓아가서 그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왔다면서 “저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36절)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야훼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37절)라고 말하는 다윗을 사울도 더 이상 말릴 수 없어서 나가라고 허락한다. 사울로서는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모두 겁먹고 싸우러 나가려 하지 않는 마당에 자원자가 있는데 왜 말리겠는가 말이다. 그는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37절)라고 형식적으로 격려한 다음 그를 내보냈다. 야훼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진 자가 떨긴 왜 떨었을까.

 

야훼께서 너와 함께…”라고 말은 했지만 사울은 여전히 인위적인 수단에 의존하고 있다. 다윗의 머리에 놋 투구를 씌워주고 몸엔 갑옷을 입혀줬으며 자기 칼까지 그의 손에 쥐어주는 등 다윗과는 대조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오로지 야훼 한 분만 의지하겠다는 다윗의 ‘설교’를 그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 모양이다. 다윗은 사울이 제공한 장비를 다 입고 몇 걸음 걸어보곤 벗어버렸다. 그런 장비에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설화자는 여기서 야훼를 향한 그의 돈독한 믿음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양떼를 치던 때처럼 그는 지팡이와 무릿매와 돌맹이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골리앗에게 나아갔다.

 

4.

 

세 치 혀로 싸우는 싸움은 2라운드에 들어섰다. 골리앗(그는 내내 ‘그 블레셋 사람’으로 불린다)은 다윗이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42절) 그를 우습게 봤다. 다윗이 막대기를 들고 나아오는 걸 보고 골리앗은 자길 개로 여기냐며 화를 내면서 “자기들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며(43절) 말하기를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주마”라고 의기양양하게 떠벌였다(44절). 이에 ‘잘생긴 홍안의 소년’ 다윗은 다시 한 번 신앙에 찬 설교를 토해낸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느님 곧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야훼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알게 하겠다. 또 야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야훼께 달린 것이다. 야훼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45-47절).

 

누구 들으라고 한 설교였을까? 골리앗 들으라는 설교였나, 아니면 겁에 질린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 들으라는 설교였나? 후자인 것 같다. 안 그런가? 칼이나 창 따위를 들고 나와 야훼를 모욕하는 무뢰한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 벌벌 떨다니, 그게 만군의 하느님 야훼를 믿는 사람들이 할 짓이냐면서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질타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의 전투는 찌르고 피가 흐르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물리적 전투가 아니라 누구를 믿고 의지하는 게 옳은지 따지는 ‘신학적 전투’였던 거다.

 

‘나를 개로 여기는 거냐?’라며 싸우는 자와 ‘야훼께서 너는 오늘 내 손에 넘기실 것이다’고 선언하며 싸우는 자의 싸움에서 승패는 보나마나다. 구약성서 안에선 말이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두 전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싸움은 다윗의 승리로 귀결됐다. 둘 간의 실제적인 싸움 얘기가 두 절(48-49절)에 불과한 것도 그래서겠다. 다윗이 달려가서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무릿매로 던져서 골리앗의 머리를 때리는 다섯 번의 행동으로 싸움이 끝났다. 거함 골리앗은 그렇게 침몰했다.

 

싸움은 끝났는데 뒷맛은 개운치 않다. 너무 싱겁게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두 개의 퍼즐 조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골리앗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는 다윗이 날린 돌에 맞아 죽었나, 아니면 다윗의 칼에 목이 잘려 죽었나? 범죄 수사관이나 법의학자나 관심 가질 법한 데 의문을 품는 건 텍스트가 두 가지를 다 말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대개 다윗이 던진 돌에 골리앗이 맞아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51절은 분명히 “다윗이 달려가서 그 블레셋 사람을 밟고 서서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그의 목을 잘라 죽였다”라고 적었다. 또 50절에는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와 돌 하나로 그 블레셋 사람을 이겼다. 그는 칼도 들고 가지 않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라고 말하니 분명 다윗이 칼이 아닌 돌로 골리앗을 죽였다는 게 아닌가.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 칼로 골리앗의 목을 잘라 죽였다니 어느 쪽을 믿어야 하나?

 

성서에서 엇갈리는 진술을 되도록이면 조화시켜야 하는 학자들은 돌로 죽인 후에 칼로 목을 잘라 ‘확인사살’했다고 본다. 골리앗의 목을 자른 칼도 다윗의 칼이 아니라 골리앗의 칼이었다는 거다. 전혀 그럴 법하지 않은 주장은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 억지로 꿰어 맞춰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히브리 성서에는 없고 칠십인역에만 있는 시편 151편(히브리 성서의 시편은 150편이 마지막이다)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사건을 노래한다. 거기에는 골리앗이 무릿매와 돌로 죽었다는 말은 없고 칼로 죽었다는 말만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돌과 칼을 모두 살려서 이 이야기를 조화롭게 읽으려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쳐 의견을 바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취한 마지막 조치다. 설화자는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갔으나 그의 무기들은 자기 장막에 간직하였다”(54절)라고 적는데 두 가지 점에서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첫째로 예루살렘은 그때 유다 땅이 아니라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으니 그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는 이야기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훗날 다윗이 수하 사병들을 거느리고 정복한 도시다(사무엘하 5:6-10).

 

둘째로 골리앗의 무기, 곧 칼은 훗날 놉이란 곳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갖고 있다가 다윗에게 건 낸 걸로 되어 있다(사무엘상 21:8-9). 다윗이 골리앗의 무기들을 자기 장막에 간직했다는 이야기도 이 진술과 안 맞는다. 물론 골리앗의 무기들 중 칼만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갖고 있었다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한 전승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는데 편집자가 ‘실수’했든지 나름의 의도를 갖고 있었든지 엇갈리는 진술을 그대로 놔뒀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다윗 이야기의 큰 흐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야기이므로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가 단일 전승 아닌 다양한 전승의 복합체임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여겨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대체 누굴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는 사무엘하 21장이 있다. 거기엔 ‘블레셋의 거인들’을 죽인 다윗의 용사들 이름이 등장하는데 베들레헴 사람인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였”다고 전해진다(19절).

 

이게 무슨 말인가? 어찌 된 일인가 말이다.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다윗이 아니라 엘하난이라니! 사무엘상 17장에도 골리앗은 ‘가드 사람’이라고 출신이 밝혀져 있으니(4절) 동명이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근데 그를 죽인 자가 엘하난이라니! 다윗은 골리앗을 죽여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의 경력에서 이토록 중요한 업적이 다른 사람의 거라니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가 말이다.

 

이런 모순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해결책을 내놨다. 다윗과 엘하난이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구약성서에는 두 가지 이름을 갖고 있던 사람이 없지 않으니 말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솔로몬도 ‘여디디야’란 이름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사무엘하 12:25). 하지만 몇 절 앞에서는 다윗이란 이름을 사용하니(사무엘하 21:15, 16, 17) 다윗과 엘하난이 동일인물이란 주장은 신빙성이 별로 없다. 일찍이 이 문제를 발견한 역대기 사가는 엘하난이 골리앗이 아닌 그의 아우을 죽였다고 했다.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역대기상 20:5).

 

<역대기서>는 신명기 역사서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쓴 역사서로서 많은 경우 신명기 역사서를 그대로 옮겨왔다. 그런데 여기서 역대기 사가는 문제를 발견했던 게 분명하다. 사무엘상 17장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하는데 사무엘하 21장은 엘하난이 그를 죽였다고 하니 말이다. 가급적이면 다윗의 약점을 감추고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애썼던 역대기 사가는 엘하난은 골리앗이 아니라 그의 아우를 죽였다고 적었던 거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만으론 누가 골리앗을 죽였는지 확증할 수 없다. 정서적으론 당연히 다윗에게 기울지만 사무엘하 21장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정서는 퍼즐을 푸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다윗 이야기의 역사성에 회의적인 학자들은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본다. 두 사람의 싸움 얘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중엔 싸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면 엘하난이 죽였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로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 어찌 해야 하나. 이것 역시 풀 수 없는 퍼즐인가…. 풀 수 없는 퍼즐을 무리해서 풀려고 하면 미궁에 빠진다. 이게 그런 경우다. 한편은 다른 편을 설득하지 못한다. 설득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므로 이 논쟁은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이럴 땐 결실 없는 논쟁을 중단하고 이 이야기가 갖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따져보는 것으로 진도 나가는 게 현명하다.

 

5.

 

현대 이스라엘의 한 고위 관리가 자기네 전투전술은 다윗에게서 비롯됐다고 말했단다. 전투를 잘 하려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무거운 갑옷 사양) 신속해야 하며 무기도 간단해야 하고(무거운 창칼 아닌 무릿매와 돌) 그걸 감출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럴 듯하지만 설마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목적이 전투전술을 전하는 데 있었겠나. 여기서 그런 걸 끄집어내겠다면 막을 수야 없겠지만 이 이야기의 본래 의미와 목적은 그게 아니었을 게다. 그럼 뭘까?

 

분명 이 이야기는 다윗을 높일 목적을 갖고 있다. 그건 누가 뭐래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내적, 외적 갈등 상황에서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란 뜻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그런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다 해도 거기엔 세대를 넘어서는 신학적 진실이 담겨 있다. 이 내용이 다윗 시대에만 소비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지고 읽히고 해석되고 적용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곧 이 이야기를 전승한 사람들은 거기서 다윗의 얼굴만이 아니라 자기들의 얼굴도 봤던 것이다. 물론 다양한 집단이 이 내용을 후대에 전했고 그들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이야기를 후대에 전한 까닭은 거기서 자기에게 의미 있는 진실을 찾아냈고 그것을 자기 현실에 맞게 해석했기 때문일 게다. 성서의 이야기나 사건에 대한 해석은 이미 성서 안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고 거기서 자기에게 필요한 진실을 찾는 노력은 성서가 닫힌 후에도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각 시대에 어떻게 해석되어 적용됐는지를 전부 아는 건 불가능하다. 합리적 추측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고 그것도 몇몇 특정한 시대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그걸 알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신학 작업이므로 하는 데까지 시도할 따름이다. 이 이야기가 각각의 시대에 어떻게 해석됐는지를 다 살피는 일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설 뿐 아니라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작업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이야기는 싸움에 대한 이야기지만 싸움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그것은 두 절(48-49절)에 그친다. 대부분은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띠는 점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사울 및 이스라엘 군대의 ‘두려움’과 신뢰에 근거한 다윗의 ‘용기’가 대조되는 점이다.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뭘 하고 있었나? 그들은 진을 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블레셋 군대, 특히 골리앗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럼 블레셋 군대는 뭘 하고 있었나? 그들 역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골리앗이 ‘말’로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를 제압했을 때 그들은 꼼짝도 못하고 떨고만 있었다. 이렇듯 옛날이나 지금이나 압제자는 적나라한 폭력을 쓰기 전에 먼저 두려움과 공포로 지배한다. 피압제자는 압제가가 폭력을 사용하기도 전에 두려워한다. 그 뒤에 뭐가 버티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레셋은 싸움도 하지 않고 몸만 풀고 있었지만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 떨었던 거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큰형 엘리압의 행위는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무엘이 첫눈에 “바로 이 자다!”라고 생각했던 그 용모 수려한 젊은이 말이다. 사무엘이 야훼에게서 외모를 보지 말라는 핀잔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엘리압은 형들의 도시락을 갖고 온 다윗을 보고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들판에 있는 몇 마리도 안 되는 양은 누구에게 떠맡겨 놓았느냐?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네가 전쟁 구경을 하려고 내려온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28절)라며 구박했다. 왜 그는 다윗을 꾸짖었을까? 무슨 잘못을 했다고? 물어보지도 못하나?

 

여기에도 드러나 있지 않은 갈등이 숨어있다. 다윗 같은 언더독은 지배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양이나 치던 목동이고 일곱(여덟) 아들 중 막내이며 사무엘이 차기 왕을 찾으러 왔을 때도 존재감이 없던 사람, 이런 다윗을 그들은 자기들 판에 끼워주지 않으려 했던 거다.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고 나간다면 적어도 그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줘야 하는 게 아닌가. 엘리압은 두 가지 생각을 갖고 다윗에게 핀잔을 주고 그를 꾸중했다고 보인다. 첫째로, 다윗이 골리앗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데 객기를 부려서 나서려 한다는 생각과 둘째로, 다윗에게 그런 능력이 있든 없든 언더독 주제에 감히 낄 수 없는 판에 끼려 했다는 데서 온 불쾌감이 그것이다.

 

이렇듯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야훼를 신뢰하지 않는 데서 오는 이스라엘의 불안과 공포와 야훼에 대한 굳건한 신뢰에서 비롯된 다윗의 용기를 대비한다. 아울러 다윗의 용기는 자가발전한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야훼에게서 왔음도 보여준다. 다윗은 양떼를 지키려고 사자나 곰과 싸웠을 때 자기를 지켜준 하느님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자길 지켜 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오랫동안 동화 같은 이야기로 읽혀왔다. 무릿매와 돌맹이 다섯 개, 그리고 야훼에 대한 믿음 외에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꼬마 다윗이 중무장하고 나온 거인 장수 골리앗을 느닷없이 공격해서 쓰러뜨린 무용담으로 말이다. 돌멩이 다섯 개까지도 필요 없었다, 하나로도 충분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은 무릿매 다루는 솜씨가 아니라 야훼에 대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돌멩이를 다섯 개나 갖고 나갔다고 다윗의 믿음 없음을 비난했다. 그 점만 제외하면 믿음으로 승리한 나무랄 데 없는 이야기란 거다.

 

하지만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잘 읽어보면(close reading) 많은 문제점을 발견한다. 그게 뭔지, 왜 생겼는지는 이미 위에서 살펴봤다. 우선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학자들이 많고 또 그 의심에 근거가 없진 않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실성 여부를 역사성에만 매달리는 것은 성서 이야기를 읽는 바른 태도가 아니다. 성서는 벌어진 사건을 그대로 전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뭔가를 말하는 것이 목적이니 말이다.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에 하느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믿었으니 그들에게 한 사건을 ‘이해’한다는 것은 벌어진 대로 사건을 복기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끌어내는 거였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도 다윗과 골리앗 얘기의 역사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거기 들어 있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이겠다.

 

이야기의 메시지는 왜 이 이야기가 필요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들어 있다. 사울 및 이스라엘 군인들의 불신앙과 불안과 비교해서 다윗의 믿음과 용기를 강조하는 게 이 얘기의 메시지인 거다. 다윗이 싸움하러 나가면서 사울에게 했던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야훼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37절)라는 말이나, 골리앗에게 했던 “야훼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야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야훼께 달린 것이다. 야훼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46-47절)라는 말에 이 얘기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말은 다윗이 한 말로 되어 있지만 실제 그가 이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화자는 ‘믿음의 연설’을 다윗 입속에 넣음으로써 그를 사울을 대체할 자격이 충분한 인물로 부각시키려 했다. 그런 식으로 다윗은 ‘만들어졌다.’ 구약성서, 특히 다윗 이야기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만일 다윗의 연설을 다른 사람이 했다고 상상하면 어떻게 될까? 말의 내용과 말한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어떻게 되나? 다윗이 한 말이 한때 부담 없이 받아들여졌다면 그것은 다윗이 그런 말 할 만한 사람이라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저것 따져보니 다윗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누군가가 그 연설을 다윗의 입속에 넣어줬단 얘기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누군가가 그 연설을 만들어서 그의 입에 넣어준 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다윗이 한 연설의 의도와 그걸 다윗의 입에 집어넣은 설화자의 의도가 다를 수도 있겠다.

 

연설 내용은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야훼에게 달려 있다는 거다. 상식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요즘 전쟁은 어느 편이 첨단장비를 많이 갖고 있는지 여부로 결정 나는데 이런 연설에 귀 기울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점은 누가 이런 믿음을 가질까 하는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 이런 믿음이 필요할까?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는 편에겐 이런 믿음이 필요치 않다. 미국이 중동전쟁을 했을 때 하느님 운운한 건 정말 전쟁의 승패가 하느님에게 달려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여론을 조작하고 대중을 세뇌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믿음은 군사력이 열세인 편에서나 필요한 거다. 믿을 게 그것밖엔 없으니까. 믿음만 갖고 승리한 얘길 후손에 전하고 싶어 했던 쪽도 당연히 그들이었다. 이런 믿음은 전형적으로 언더독의 믿음이었던 거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추앙받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를 언더독으로 규정하는 건 난센스다. 하지만 그는 한때 언더독이었다. 그는 사울에게 쫓길 때 무뢰배를 모아 떠돌아다니면서 속된 말로 ‘삥’을 뜯곤 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그런 형편없는 자에게 야훼에 대한 믿음이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삶의 필수 요소였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문제는 어떤 믿음이냐에 있다. 하느님이 군대나 무기를 통해 도와준다는 믿음과 그걸 갖지 못했으니 그냥 무턱대고 하느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믿음의 차이 말이다. 의지할 군대도 신뢰할 무기도 없어 기댈 데라곤 하느님의 도움 밖에 없는 자들의 처절한 생존본능, 다윗이 골리앗에게 무릿매와 돌멩이만 갖고 이겼다는 이야기를 후대에 전한 사람들에게 믿음은 이런 생존본능이었을 게다. 이 생존본능이 이 얘길 후대에 전하게 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중엔 변했지만 이 이야기에서 다윗은 상당히 순진해 보인다. 그는 전쟁터의 이스라엘 군대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기댈 언덕이어야 할 맏형에겐 환영과 격려는커녕 핀잔과 꾸중만 들었다. 그를 골리앗과의 싸움에 내보낸 사울은 이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보다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그랬을 거다. 그런데 다윗이 이겼다. 그는 사울이 상습적으로 포상으로 내놓은 왕의 ‘사위’ 자리를 탐내지도 않았다. 그는 그렇게 순진했다.

 

이랬던 다윗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나는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해 보려고 노력 안 한 건 아닌데 아무리해도 그가 좋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다. 그의 고뇌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읽지 않고 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이야기들은 좀 더 있어야 나온다. 몇 걸음만 더 나가 보자. 그러면 그의 고뇌가 조금씩 보일 터이니. 다음엔 왜 야훼가 다윗을 그토록 마음에 들어 했는지 살펴보자.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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