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9)
산모(産母)의 권리, 그 시대가 우리보다 나았다(2)
1. 레위기 12장은 산모에 대한 규정이다. 산모는 아이를 출산하면서 부정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정하다고 규정되는 것이다.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레위기 12:2).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여자가 생리를 하면 그것은 부정하다고 하는데(레위기 15:19-24),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한 것을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으니라”(에스겔 36:17).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기 때문이다(에스겔 36:18). 그것이 마치 여인이 생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2. 부정(不淨)하다는 것을 정말 부정적(否定的)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익숙한 공간과 사물들을 그렇지 않은 것과 구별하고, 익숙한 것들과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기준을 정해놓았다. 그것을 타부라고 하는데, 타부를 범하는 것을 “부정 탄다”고 한다. 대체로 어떤 행위나 상태를 부정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것이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3.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정결 예식을 해야 한다. 거룩한 곳에서 더 거룩한 곳으로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결 예식을 행해야 했다(레위기 16:1-4). 그런데 그 반대 경우도 정결 예식을 해야 한다.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거룩한 곳에서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25 속죄제물의 기름을 제단에서 불사를 것이요”(레위기 16장). 제의적으로 정결예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면 부정 탄다. 그런데 정결한 상태에서 정결을 벗는 예식을 하지 않고 거룩한 곳에서 나오는 것도 부정 탄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실인 규정에도 나온다. 나실인이 몸을 구별하는 기한을 채우면, 거룩함에서 벗어나는 정결 예식을 행해야 한다. 그래야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민수기 6:13-20).
4. 언젠가 미국에 갔을 때, 어느 미국 교회 교인수가 계속 줄어드는 바람에 더 이상 교회를 운영할
수 없게 되어서 교회 문 닫는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았다. 교회 문 닫는 예배가 생소하기도 했고, 또 분위기가 오죽 침통할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놀랐다. 교회 문 닫는 예배 분위기가 마치 교회를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유쾌했다. 그 지역 여러 교회들이 와서 함께 찬양하고 교제하면서 예배를 마쳤다. 물론 그 교회 건물은 노회에서 관리하지만, 만약 교회 건물을 교회 용도가 아닌 세속적인 용도로 파는 경우에는 교회를 봉헌할 때와 반대로 그 건물을 세속화하는 예식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런 점에서 정과부정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
5. 레위기 11장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규정하는데, 여기서도 어떤 특징을 가진 동물들을 정형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그것들을 정하다고 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들을 부정하다고 한다. 정한 것으로 규정된 짐승들은 대체로 가축들이고,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짐승들은 야생 동물들이 대다수다. 그리고 정한 짐승들은 사람들이 잡아먹을 수 있지만, 부정한 짐승들은 그럴 수 없어서, 어떤 면에서는 보호를 받는 것이다. 정결 규정이 부정하다고 여기는 것들, 가증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생명존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6. 그리고 레위기 12장은 출산하는 여인이 피를 흘리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보는데, 그것은 출산 자체가 부정해서가 아니라, 출산하는 과정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생명을 감소하는 상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부질환을 언급하는 13장 역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14-15장은 몸에서 피나 정액, 또는 고름이 나오는 유출증상에 대한 것인데, 이것 역시 몸에서 무엇이 나오면, 생명을 감소시킨다고 생각해서, 즉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부정하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부병과는 달리, 유출증상은 제사장이 아닌, 당사자가 판단해서 적합한 행동을 하게 한다.
7. 이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남자를 낳으면”(2절)이라는 구절이다. 이것은 여자 아이를 낳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5절). 레위기 12장에 의하면, 산모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 7일 + 33일, 모두 40일 동안 부정하고, 그 이후에 정하게 된다. 그리고 산모가 여자 아이를 낳으면, 14일 + 66일, 모두 80일 동안 부정하고, 그 이후에 정하게 된다. 그러니까 남자 아이를 낳을 때보다 여자 아이를 낳을 때 부정한 기간이 두 배나 길다.
8. 산모가 남자 아이를 출산했을 때와 여자 아이를 출산했을 때, 정결해지는 기간이 이렇게 다른 것에 대해 대체로 성차별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한다. 즉 남자 아이보다 여자 아이가 더 열등하기 때문에 산모가 정결해지는 기간도 두 배나 길다는 것이다.
9. 과연 그럴까?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더 부정하다는 게 사실인가? 실제적인 면에서 생각해보자. 레위기 기자는 이 기간 동안, 즉 산혈이 깨끗해지기까지는, 다시 말해서, 몸이 정상상태로 회복되기까지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아야 한다(4절)고 규정해 놓았다. 유출증상 규정에 따르면, 유출증상이 있을 때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그 사람도 부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산모는 그 기간 동안 명절에 준하는 휴식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요즘 식으로 말하면, 출산 휴가를 얻은 셈이다. 남자 아이를 낳을 때는 40일인데, 여자 아이를 낳을 때는 80일 동안 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남자 아이를 낳을 때보다 여자 아이를 낳을 때 더 쉬게 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차별적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혁신적인 제도이다. 이런 점에서 레위기가 모정천리를 설파한다고 믿는다.
10. 레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희년에 관한 규정(25장)이 대표적이다. 파산과 회생에 대해 한국사회보다 최소 2500여년 앞선 것이다. 그만큼 레위기는 인간의 권리보호에 민감하다. 무엇보다 산모의 권리에 대해서.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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