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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시스라의 어머니, 모든 어머니는 존중받아야한다(1)

by 한종호 2015. 8. 5.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0)

 

시스라의 어머니, 모든 어머니는 존중받아야한다(1)

 

 

1. 시스라의 어머니? 아마 생소할 것이다. 오늘은 대다수 사람들이 처음 들을 “시스라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그 이야기는 전쟁 이야기로 시작한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전쟁 이야기다. 전쟁담만큼 신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영웅들도 전쟁영웅들이지 않는가.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이 그만큼 폭력적이라는 것인데, 성경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폭력에 대한 폭력. 사사기도 우리를 그 잔인한 폭력의 현장으로 인도한다. 사사기 4장과 5장은 한 묶음이다. 독자들은 4장과 5장을 읽으면서, 드보라를 주역으로 생각할 텐데, 그렇긴 하지만, 성경을 꼼꼼하게 읽다보면, 의외로 시스라가 주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4장에서 5장으로 읽어가다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2.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선 사건을 차근하게 살펴보자. 사사기는 새로운 단락을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로 시작하면서, 문학적으로 <범죄→심판|탄원→구원>의 형태를 반복한다. 옷니엘, 에훗, 삼갈에 이어서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그때 지파별로 흩어져 살면서 인근 지파들끼리 느슨한 연맹관계를 맺고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빈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었는데, 그는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한 하솔을 다스리고 있었다. 야빈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단다(사사기 4:3).

 

3. 성경기자는 야빈을 “가나안 왕”이라고 칭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왕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호수아 12장 7-24절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쳐서 멸한 그 땅의 왕들” 명단을 나열하는데, 모두 31명이나 된다. 그들은 왕이라기보다는 촌장이나 부족장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야빈도 그런 정도였을 텐데, 다른 촌장이나 부족장들보다 좀 더 강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빈이 하솔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들을 아울러서 통치하고, 또 이스라엘 지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군사력을 갖고 있어야 할 텐데,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를 갖고 있었다(사사기 4:3). 하솔이 제대로 된 국가도 아닌데 병거를 구백 대나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리 신빙성 있어 보이진 않는다. 어쨌든 군사력이 다른 곳보다 강했다는 의미일 텐데, 성경기자는 야빈보다 그의 군대 장관에게 더 주목한다. 그는 시스라였다. 그리고 그 철 병거를 비롯해서 군사들을 통솔했다. 그래서 야빈이 아닌 시스라가 전면에 등장한다.

 

 

 

4. <드보라+바락> 조합은 <야빈+시스라> 조합에 대응한다. 드보라는 납달리에서 바락을 불러와 그에게 전투를 맡긴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제시한 것은 구체적이다. “너는 납달리 자손과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사사기 4:5-6).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올라가기를 요청한다. 그러자 드보라는 바락이 시스라를 죽이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삿 4:9)고 말하신다. 이 구절은 전투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미리 보여준다. 그리고 여인들이 주도하는 전투라는 것을 강조한다.

 

5.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보는 대로, 드보라나 바락이 주목하는 대상은 야빈이 아니라 군대장관인 시스라이다. 바락이 군사를 모아서 다볼 산 요새에 오른 것을 보고 받는 것도 야빈이 아니라 시스라이다(사사기 4:12). 그리고 드보라는 바락에게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고 말한다(사사기 4:14). 사사기 4장과 5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람이 바로 시스라이다.

 

6. 드보라가 전투 결과를 예고했지만, 성경기자가 서술한 바에 의하면, 독자들이 예상하는 것과 달리 전투는 아주 싱겁게 끝났다. 가나안 왕들이 와서 도왔다는데도(사사기 5:19), 전투는 시스라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났다는 것이다. 성경기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군사들 앞서 가셔서 시스라와 그의 병거, 그리고 군사들을 칼로 쳐서 혼란에 빠뜨리셨단다(사사기 4:15). 물론 바락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죽을 힘을 다해서 싸웠겠지만(사사기 5:18), 그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승전 요인이 분명 있었을 것이고, 성경기자는 이것을 신적인 개입으로 해석한 것이다.

 

7. 결국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도주하고, 바락은 시스라의 병거들과 군사들을 추격해서 시스라가 주둔하던 본거지인 하로셋학고임까지 가서 시스라 군대를 쳤다(사사기 4:15-16). 파죽지세로 적의 중심부까지 치고 들어가서 완전히 궤멸시켜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스라의 막강 정예부대가 어이없게 전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8. 그러나 전쟁은 시스라를 죽이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왜 하솔 왕 야빈이 최종 제거 목표가 아니고 시스라가 최종 제거 목표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시스라의 군대를 전멸시킨 바락은 시스라를 추격한다.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서 말도 타지 않고 시종도 없이 홀로 걸어서 어디론가 도망했단다. 그가 찾아간 곳은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이었다. 성경기자는 이야기 흐름을 끊으면서 11절에 헤벨 이야기를 삽입하는데, 바로 이 장면을 위한 복선이었던 것이다. 성경기자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고 말한다. 헤벨은 318명의 군대를 데렸던 아브람 같았는지도 모르겠다(창세기 14:13-16). 야빈과 헤벨의 화친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친구인 아훗삿, 그리고 군대장관 비골을 데리고 이삭에게로 와서 맺은 화친 계약(창세기 26:26-31)을 떠올리게 한다.

 

9. 야엘은 시스라를 맞아들이고 안심시킨다. 그를 이불로 덮어준다. 시스라가 물을 달라고 하자 야엘은 우유를 마시게 하는데, 이것은 사람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준다. 시스라는 야엘을 철썩 같이 믿고 평안하게 잠든다. 야엘은 시스라를 잠재우기 위해서 일부러 엉긴 우유를 마시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시스라를 잠들게 한 다음, 야엘은 그를 죽이는데, 성경기자는 야엘이 시스라를 죽이는 장면을 꽤 상세하게 서술한다(사사기 4:21.) 5장은 시스라가 죽는 장면을 훨씬 극적으로 묘사하는데, 시스라가 서 있는 상태에서 야엘이 그를 죽이는 것으로 서술한다(26-27절). 어쨌든 방망이로 (아마 끝이 뾰쪽했을) 장막 말뚝을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박았다는 것은 동일하다. 시스라를 수색하던 바락이 그곳에 왔을 때, 야엘은 자신이 살해한 시스라의 처참한 시신을 바락에게 보여주는데, 성경기자는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힌 것에 주목한다.

 

10. 이렇게 해서 바락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에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고, 시스라가 지휘하던 막강 정예부대를 지휘관과 함께 잃은 야빈은 점점 약해져서 이스라엘은 결국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사사기 4:23-24).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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