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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톺아보기

예수라는 원천에 이르고 싶다

by 한종호 2015. 8. 12.

김기석의 톺아보기(12)

 

 예수라는 원천에 이르고 싶다

 

1.

 

매미 울음소리가 한참이던 그해 여름, 나는 수영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들판 저편, 논배미 곁에 있던 샘을 무시로 뛰어들던 동네 형들의 동작은 날렵했다. 발판을 굴러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며 물에 뛰어드는 그 멋진 비상을 둑에 앉아 감상만 해야 했던 나는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 어느 여름 날 수영학습을 감행했다. 집 앞 논배미 옆에 있던 둠벙에 뛰어든 것이다. 양팔을 바람개비처럼 돌리기만 하면 몸이 앞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어라, 그게 아니었다. 내 몸은 납을 달아맨 추처럼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며 정신이 아뜩해지는 순간, 어떤 강력한 손길이 내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밭에서 농약을 치고 있던 형이었다. 분무기를 벗어던지고 6-7미터 높이의 둑 위에서 둠벙으로 뛰어내려 동생을 건진 것이었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형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그래서 나는 빙긋 웃었다. 형도 어이없는지 한숨을 내쉬더니 따라 웃었다. 그리고 형은 봄날 볍씨 소독을 위해 사용하곤 하던 고무 함지를 내려 그 속에 물을 채워주면서 그 속에서 놀라고 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래도 손에 쥐어준 개구리참외의 단맛과 등에 닿는 따뜻한 햇살 때문에 형을 용서하기로 했다.

 

2.

 

서울로 유학을 와 누나의 전셋집에 기거할 무렵, 주인집 아줌마는 가끔 누나가 없는 틈을 타 나를 방 밖으로 불러내곤 했다. 아줌마의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번진 날은 내 어깨가 으쓱해지는 날이었다. 아줌마는 가끔 양푼에 밥그릇이나 숟가락을 담아 우물 뚜껑 위에 올려놓고 물을 길을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그 양푼이 우물 속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나를 불러내곤 했던 것이다. 아줌마는 나를 우물타기 경력사원으로 인정해주면서 그릇을 건져달라고 부탁했다. 미끄럽고 깊은 우물 벽을 두 팔과 다리를 이용해 오르내리며 나는 삭정이를 꺾으려 오르곤 했던 시골 산을 생각했고, 또 가끔은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도 했다. 기명들을 건져 두레박에 담고 “끌어 올리세요” 하고 외치면, 아줌마는 기왕 내려간 김에 우물 청소 좀 하고 올라오라고 말씀하셨다. 60년 대 중반, 세상이 아직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3.

 

자치 생활을 할 무렵, 수도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울의 달동네에 살던 나는 깊은 밤 물지게를 지고 공동 수도가 있는 아랫마을로 내려가야 했다. 길게 줄지어 서있는 물통들을 볼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들던 시골의 샘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서로가 하룻밤 새 물어온 이런저런 소문들을 나누느라 속살거리던 우물가, 가끔은 터무니없이 큰 웃음이 폭죽처럼 터지기도 하던 그 우물가가 아니었다. 누구 하나라도 새치기할까봐 눈에 불을 켜고 마치 전장에서 서로를 싸늘하게 응시하는 군인들처럼 굳은 표정으로 우리는 말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간신히 물을 받아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다보면 물의 1/3쯤이 쏟아졌다. 허망했다. 소년 시절 내 기억에 각인된 샘터의 풍경은 그러했다.

 

 

 

 

4.

 

옛날 영월에는 물이 아니라 술이 나오는 샘이 있었더란다. 그런데 이 샘은 사람에 따라 다른 술을 내곤 했다. 양반이 가면 맑은 청주를 내고 상놈이 가면 탁주를 냈다. 마을에 살던 상놈 하나가 청주가 마시고 싶었지만 샘은 그런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상놈으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 노릇인데 술 샘까지 자기를 차별하자 그는 딱 살맛이 없었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을 차리면 사는 법. 그는 어느 날 양반 옷을 입고 갓까지 구해 쓰고 제법 ‘흠흠’ 소리까지 내며 팔자걸음으로 술 샘에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술 샘은 비웃기라도 하는 듯 텁텁한 탁주를 내는 것이었다. 화가 치민 그는 작대기로 술 샘구멍을 마구 쑤셔댔다. 그 후부터는 술이 안 나오고 물만 나오게 되었단다.

 

술을 내는 샘은 차별 세상의 은유이다. 이현주 목사님은 이 민담을 이렇게 읽었다.

 

“인간의 불평등에서 비롯하여 인간의 불평들을 조장(助長)하고 있는 술 샘은 마땅히 무너져야 한다. 인간을 구분 짓고 계층으로 갈라 세워 서로 갈등하게 하는 ‘술’은 천하 인민 모두에게 같은 맛으로 먹히는 ‘물’로 바뀌어야 한다. 술 샘 전설은 바로 이 변혁의 과정, 인간 해방의 과정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칼아 너 갈 데로 가>>, 생활성서사, 1993, 39쪽)

 

세상이 으레 그러려니 하는 사람은 불평등을 운명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을 전복하는 상상력은 역시 억울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술의 세상을 물의 세상으로 바꾸는 일, 이것이 자유의 확대과정인 역사일 것이다. 어디 작대기 하나 없나?

 

5.

 

최전방 부대의 군목으로 근무할 때, 내가 있던 교회는 산등성이에 있었다.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언제라도 십자가 탑을 바라보며 마음에 위안을 얻으라는 설립자의 마음씀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군종병들만 죽어났다. 교회 청소를 한번 하려면 근 7-80미터는 떨어진, 병사들이 소위 ‘사이다 장’이라고 부르는 냇가의 집수장까지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차라리 그건 고행이었다. 어느 날 전방에 다녀왔더니 군종병 둘이 교회 마당가에서 땅을 파고 있었다. 웬일인가 싶어 다가가 뭘 하냐고 물었더니 우물을 판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그곳은 산줄기로 보아 도저히 물이 날 수 없는 곳이었다. 물을 긷는 어려운 사정이야 알겠지만 이렇게 어리석어서 행복하겠다고 했더니 그들은 두고 보라면서 계속 땅을 팠다. 물론 물이 나올 리가 없지. 그런데도 군종병들은 태평이었다.

 

어느 날 전방 부대를 방문하고 돌아오는데, 큰 비가 내렸다. 진창으로 변한 산길을 간신히 올라 교회에 들어서니 군종병들이 마당가에 서서 춤을 추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들이 기다린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산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물이 그 마른 샘에 가득 차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군종병들은 흙이 곱게 가라앉은 자기들의 우물에서 맑은 물을 퍼다가 교회당 구석구석을 정성껏 닦았다. 갈멜산에서 제단 위에 물을 붓는 엘리야가 그런 모습이었을까?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우물은 고갈되었고 그들은 다시 지게를 지고 사이다 장으로 내려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귀한 교훈을 얻었다. 외부에서 흘러드는 기쁨은 지속성이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미약할지라도 속에서 솟아나는 물이 있어야 샘이 샘일 수 있는 것처럼, 기쁨은 내 속에서 발원할 때 기쁨인 것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분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하셨다.

 

6.

 

고은 선생의 아름다운 구도소설 《화엄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구도 여행 중에 있는 선재는 사공 바시라를 만난다. 바시라는 어린 선재에게 말한다.

 

“선남자여, 어린 선재여. 나는 저 멀리 먼 벵갈 바다, 짙푸른 바다를 다 안단다. 어느 곳에서는 바다의 짠물을 뚫고 민물이 솟아나온단다. 뱃사람들은 먼 바닷길에서 물이 떨어지면 그곳으로 가서 물을 마시게 된단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그 물을 도솔천의 물이라고도 하고, 생명의 물이라고도 한단다….”(《화엄경》, 민음사, 1991, 201쪽)

 

짠 물을 뚫고 솟아나는 민물, 이 이미지는 너무나 강력해서 세상사에 시달려 낙심될 때마다 샛별처럼 내 가슴에 떠오르곤 한다. 그곳에 가고 싶다. 세상이, 아니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유다서13절)이라 해도 어딘가에는 맑은 샘으로 솟아나는 이들이 있다. 그렇기에 절망은 불신앙이고 사치이다.

 

7.

이제 나는 안다. 사람도 샘이라는 것을. 게으른 일상을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때 나는 ‘루쉰’의 샘에 가곤 했다.

 

지극히 진실한 소리를 내어 우리를 선과 미와 강건으로 이끌 사람이 있는가? 따뜻한 소리를 내어 우리를 황폐와 혹한으로부터 구출해줄 사람이 있는가? 국가가 황폐해졌는데 최후의 애가를 지어 천하에 호소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예레미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루쉰, 《투창과 비수》, 솔, 1997, 61쪽)

 

그런 이가 없어 중국이 적막해졌다고 말하는 루쉰의 강건하고 절제된 언어는 나의 느른한 일상을 깨우는 샘물이었다. 얼굴에 거미줄을 뒤집어쓴 듯 현실에 포박 당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샘물을 찾곤 했다.

 

“나는 당신의 명령을 밤낮으로 들었다. 나는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나는 이것을 내 의무로 삼았다. 내가 성공했는지 못했는지는 당신이 판단해야 한다. 나는 당신 앞에 꼿꼿이 서서 기다린다. 장군이여, 전투가 끝나가니 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싸웠노라. 나는 부상을 당해 쓰러졌고, 용기를 잃었지만, 싸움터를 버리지 않았다.”(《희랍인에게 이 말을》, 고려원, 1979, 19쪽)

 

그의 샘에서 목을 축이고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아, 내가 거쳐 온 샘물은 수없이 많다. 호메로스로부터 최근의 아룬다티 로이까지. 그 샘물들을 마시면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모든 샘물들이 만나는 큰 정신의 지하 수맥, 예수라는 원천에 이르고 싶다.

 

8.

 

쌩 떽쥐베리는 어린왕자의 입을 통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적 오래된 집에 살았던 기억을 더듬는다. 그 집에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왔었단다. 물론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또 어쩌면 찾아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보물로 인해 그 집은 매력이 있었다. 그 속 깊숙이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분은 세상의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 한다. 내가 처한 삶의 시간이 언제이든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아름답다. 그의 속에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으니까.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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