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노래, 질펀하도다
아주 가끔 성서를 들출 때가 있다. 물론 종교적 열심이 아닌 텍스트에 대한 관심 때문이지만, 어쨌든 성서를 읽으며 나름의 마음공부를 한다. 그런데 성서는 꽤 야한 구석이 있다. 아담과 하와의 삶이 그렇고, 솔로몬 왕이 사랑한 아리따운 여인 이야기도 제법 농밀하다. 그런가 하면 그 옛날 <주말의 명화> 시간에 봤던 삼손과 데릴라의 사랑 아닌 사랑도 은밀한 이야기 천지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성서는 에로티시즘으로 가득한 책이다.
《성서의 에로티시즘》은 ‘성서에 잠입한 에로스의 그림자’를 추적하는 책이다. 물론 에로스 혹은 에로티시즘이라는 말은 기독교에서 대놓고 말하기 뭣한 주제다. 지은이의 말에 따르면 에로스는 ‘수상한 부담 덩어리’이고, 에로티시즘은 ‘신앙과 경건의 이름으로 자랑스레 내세우기 면구스러운 심리적 켕김을 동반’하는 그 무엇이다. 성서에 그렇게 많은 사랑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
에로스는 희랍의 신 이름이고 그래서 이방 신화와 종교 전통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가까이하기에 흉측하다. 그뿐 아니라 에로스의 사랑은 남녀 인간의 육체적 관능과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에서 에로스나 에로티시즘은 “타락한 세속의 음란과 방종을 부추기면서 마치 천박한 포르노그래피의 사상적 저변” 정도로 치부된다.
ⓒ내셔널 갤러리 루벤스가 그린 < 삼손과 데릴라 > . 미묘한 사랑 이야기다.
‘호혜적 파트너’로서의 관계
상황이 이런데도 지은이는,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서, 점점 더 멀어지기 전에 기독교와 에로티시즘의 화해를 시도한다. 에로스와 에로티시즘이 “인간의 현 존재를 가능케 하는 생명의 거푸집이자 그것의 재생산 구조이며, 나아가 모래알처럼 분립되고 흩어진 인간의 하나 됨을 갈망하는 오래된 인류의 꿈”이기 때문이다. 또한 에로티시즘이 “현대 문명의 두터운 금기를 성찰하고 그것을 과감히 위반하는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생명의 숨구멍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비평의 풀무질”이기 때문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인간의 문화와 예술, 종교와 사상은 결국 에로티시즘이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하지 않았던가.
한일장신대 신학부 교수인 지은이 차정식은 성서에 드리운 에로스의 그림자를 찾아내기 위해 그야말로 성서 구석구석을 누빈다. 먼저 아담과 하와가 태초의 인간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고독’이라는 감정에 주목하면서 두 사람이 한 몸의 존재를 넘어 한 몸 ‘되기’를 꿈꾼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지은이는 영적 상상력을 발휘해 성서의 텍스트가 내포하고 있는 에로티시즘, 곧 “서로간의 사귐을 통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화이부동의 지평을 개척해나가야 할 호혜적 파트너로서의 관계”에 대해 풍성한 사유를 풀어낸다.
그런가 하면 성서를 통틀어 가장 에로틱한(?)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아가서> 통해 ‘담대한 아름다움과 에로틱 신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전개한다. 아가서의 두 연인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갈망한다. 사랑이 깊어져 상사병에 걸리기도 한다. 두 연인은 주변 친구들의 초청을 받아 간 잔치에서 먹고 마시며 사랑을 예찬한다. 예찬으로 끝나지 않고 “두 사람만의 은밀한 사랑을 위한 침상과 거기서 나눠지는 성애의 미묘한 쾌락”까지 성서는 자세히 묘사한다. 이를 통해 지은이는 인간의 사랑의 심연은 신에 대한 사랑의 심연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그러고는 “아가의 질펀한 사랑 노래, 그 담대한 에로티시즘의 향연이 더욱 갈구되어야 한다”라고 덧붙인다.
《성서의 에로티시즘》은 에로티시즘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독교인들의 시각만을 바꾸는 책은 아니다. 지은이는 신학은 물론 철학과 문학, 예술 분야 등 다양한 관점을 넘나들며 질펀한 성적 판타지로 가득한 현대사회에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제시한다. 성서에서 찾아낸 에로스의 유산을 통해 오늘 우리 사회의 “아름다움과 육체, 욕망과 억압, 금기와 위반이라는 에로티시즘의 핵심 개념”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더 없이 반가운 책이 바로 《성서의 에로티시즘》이다.
장동석/<기획회의> 편집주간,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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