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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룻, 신실과 인내로 불가능을 이겨내다(2)

by 한종호 2015. 9. 20.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5)

 

룻, 신실과 인내로 불가능을 이겨내다(2)

 

 

1. “너는 반드시 어머니가 되어라!” 이것은 모정천리의 관점에서 룻기를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말이다. 그런데 룻기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발치 이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몇 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엘리에셀이 아브람의 환도뼈에 손을 얹고 맹세했는데(창 24:9), 이 환도뼈는 실제로는 남성의 성기이다. 그러니까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성기를 붙들고 맹세한 것이다. 그리고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쳤는데(창 32:31-32), 그것도 실제로는 성기이다. 그렇다면 “발치 이불”도 보아스의 성기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나오미는 룻에게 잠든 보아스와 성관계를 맺으라고 일러준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알 수 없고, 또 방금 이야기한 것을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상황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 나오미가 룻에게 지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신부단장이다.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은밀하게 시집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룻이 보아스와 함께 초야를 보내게 지시했다는 말이다. 신혼초야에 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2. 룻은 나오미가 일러준 그대로 했다. 그렇게 일을 마쳤는데, 술에 취해 잠들었던 보아스가 정신을 차렸다. 룻을 보고 놀란 보아스는 자세를 바로 하고 룻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요?” 룻은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나는 당신의 시녀 룻입니다.”(룻 3:8-9) 룻은 자신을 “나오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이라고 하지 않는다. “당신의 시녀”라고 한다. 2장 13절에서도 룻은 보아스에게 자신을 “당신의 시녀”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말로는 같은데, 히브리어로는 다르다. 2장 13절은 “당신의 하녀”라는 뜻이고, 3장 19절은 “당신의 시첩”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룻이 자신을 보아스의 첩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말에서도 우리는 보아스와 룻 사이에 그날 밤 어떤 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아스도 이 말을 들으면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3. 룻은 계속해서 말한다. 자신의 신분을 밝힌 다음,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라고 말한다. 여기서 “옷자락”은 직역하면 “날개”이다. “당신의 날개를 당신의 시첩 위에 펴소서.” 우리는 이 “날개”라는 말도 앞에서 한번 나왔음을 기억한다. 2장 12절을 보면, 보아스는 룻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기 위해서 왔다고 말한다. 보아스는 이 말을 관용적으로 했는지 모르지만, 룻은 그 단어를 사용해서, 자신이 보아스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날개를 펴서 자신을 덮어달라고 한다. 즉 그를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책임져달라는 것이다.

 

 

 

4. 어떤 사람들은 이때 룻이 보아스에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호해달라고 했을 뿐이지 자신을 부인으로 삼아달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룻이 경제적인 측면만 이야기하려고 했다면, 그렇게 신부단장을 하고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보아스를 찾아가서 묘한 장면을 연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룻이 보아스에게 자신을 그의 날개로 덮어달라고 한 것은 분명 자기 남편이 되어달라는 말이다. 룻은 대담하게 청혼을 한 것이다.

 

5. 자초지종을 파악한 보아스는 모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하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서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재판을 통해서 친족을 책임지는 고엘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취득한 보아스는 재판이 끝난 다음에 바로 룻과 결혼식을 했다. 온 베들레헴 사람들이 보아스 집에 모여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축하했다.

 

6. 그런데 두 사람이 결혼하는 이 장면에 이르면, 사람들은 한 가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때 보아스 나이가 상당히 많았을 텐데, 아내가 없었을까? 룻기는 보아스의 아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보아스가 그때까지 독신으로 지냈을 리 없다. 당연히 결혼해서 말론과 기룐 만한 자녀들을 이미 여럿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룻을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던지, 어떤 사람들은 보아스의 첫 부인이 병들어 세상을 떠나서 보아스가 룻과 결혼할 무렵에는 보아스가 홀아비로 지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7. 하지만 굳이 이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일종의 신앙적 결벽증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를 법적으로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보아스가 아내를 여럿 맞아들였다고 해도 흠될 게 없다. 그리고 룻기는 보아스의 아내가 몇인지 관심이 없다.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결혼 후 룻은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성경기자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룻 4:13)고 말한다. 임신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보아스와 룻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결혼하고, 임신하고, 또 출산했다는 것이다.

 

8.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은 것을 보면, 룻이 임신 못하는 여인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룻이 말론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지 못한 것은 룻이 임신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론이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에 와서 모압 여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주를 내려서 임신치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저주가 보아스로 인해서 풀어져서 룻이 결혼하자마자 임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임신케 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주장한다.

 

9. 하지만 이렇게만 보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이 꼭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는 룻기를 이런 식으로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릇된 것을 풀어 가시는 분이지 일을 그릇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론과 기룐이 각기 룻과 오르바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지 못한 것은 그들이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신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압에서 험한 일을 하다가 사고로 동시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10. 어쨌든 보아스가 룻과 결혼해서 룻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엘리멜렉 가족이 겪은 모든 비극을 다 씻어내는 것이다. 보아스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엘리멜렉 집안의 대를 잇게 해주었고, 그리고 엘리멜렉의 가족들이 겪은 모든 아픔을 일순간에 다 씻어주었다. 무엇보다 보아스는 룻이 어머니가 되게 해주었다. 물론 일이 그렇게 끝난 것은 무엇보다 나오미가 세운 계책과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룻과 나오미는 진정한 어머니가 되었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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