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2)
여정을 향한 용기
인간은 아득히 오래전부터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평생을 아무런 불만 없이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지금껏 알지 못했던 이들과 만나고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인생사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때로 그 여정의 과정에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이 움츠리고 있다 해도, 그건 이미 떠나기로 작정한 이들의 발길을 막아낼 수 있는 장애물은 되지 못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물론이고,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西遊記)》도 모두 일상의 궤도에서 탈출한 존재들의 모험에 찬 열망의 기록이라고 할만합니다.
종교가 인간사를 지배한 시절에는, <순례>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시험대위에 올려놓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목표로 하는 성지(聖地), 또는 성배(聖杯)등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의 산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모든 순례는 사실상 그 감추어진 목표는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성지에 도달한 자는 그 자신이 성화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려는 기쁨을 누리는 감격이 있을 것이며, 성배를 찾는 이는 자신에게 부과된 사명의 완수라는 푯말을 세우는 자가 됩니다.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괴물이나 폭풍, 또는 험난한 지세와 온갖 유형의 신들은 우리가 인생사에서 직면하게 되는 도전이나 위기, 또는 시험이나 뜻하지 않은 도움 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가령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가 겪게 되는 일련의 모험적 사건들은 광풍이 몰아치는 지중해 또는 애개해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고, 이를 끝내 돌파해내는 용기 있는 인생에 대한 찬사와 이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이 그 어떤 목적지에 당도하는 과정은 피할 수 없이 많은 어려움과 격렬한 쟁투 그리고 패배와 승리를 둘러싼 갖가지 체험들이 얽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괴들의 술책을 꿰뚫어보고 이를 격퇴하는 손오공도 자신의 지략과 힘만 믿고 나대던 존재가 참된 인간이 되는 성지순례자의 원형이라고 할 만 합니다. 제아무리 자신의 능력을 뻐긴다해도 우주를 섭리하는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여야하는 겸손을 배우면서 성숙해가는, 그런 인간사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에 오늘날은 이렇게 모험과 충격이 요구되는 여정의 기회는 드물죠? 그럴 선택을 할 만큼의 시대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용기라는 것이 낯설고 이미 되어 있는 것의 안락함에 쉽게 젖어버리는 습관이 몸속에 배어 있기조차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새 왜소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다 광활한 시야, 보다 깊은 안목, 그리고 새것을 향한 열망과 용기 있는 선택, 이런 것들을 통과하면서 직면하게 되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 없는 마음, 잠시라도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시간이 있게 된다면, 이런 것들이 우리의 영혼에 자라나는 즐거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웅/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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