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7)
고기는 너희가 처먹어라
“만군(萬軍)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犧牲)에 번제물(燔祭物)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대저(大抵) 내가 너희 열조(列祖)를 애굽 땅에서 인도(引導)하여 낸 날에 번제(燔祭)나 희생(犧牲)에 대(對)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命)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命)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百姓)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命)한 모든 길로 행(行)하라 그리하면 복(福)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聽從)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自己)의 악(惡)한 마음의 꾀와 강퍅(剛愎)한 대로 행(行)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向)하고 그 얼굴을 향(向)치 아니하였으며”(예레미야 7:21-24).
세상에 태어나 라디오를 처음으로 본 것은 나이가 짐작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이었다. 큰 형이 뭔가 이상한 것들을 모아(그게 진공관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소리를 내는 기계를 만들었다. 이상하게 생긴 기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을 때 얼마나 놀랬던지. 저 작은 기계 안에 어떻게 사람이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인지, 얼마나 사람이 작으면 기계 안에 들어가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 라디오를 처음 본 아이로서는 그 어떤 것도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성경공부를 할 때 교우들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다. 멀쩡한 라디오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일까? 전원이 빠져 있을 때,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지 않았을 때, 볼륨을 높이지 않았을 때, 주변이 몹시 시끄러울 때…, 대답들이 이어진다. 빠뜨릴 수 없는 대답 중의 하나가 다른 일에 열중할 때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청종하는 것이다. ‘청종’(聽從)이란 ‘이르는 대로 잘 들어 좇음’이라는 뜻이다. 귓등으로가 아니라 귀담아 듣고, 들은 대로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런 하나님의 바람과는 달리 백성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얼굴 대신 등을 향한 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한다. ‘강퍅’이라 쓰니 글자를 맞게 썼나 싶게 어색하다. 특히 ‘퍅’자가 그렇다. ‘강퍅’이란 ‘성미가 까다롭고 고집이 세다’라는 뜻으로, ‘굳셀 강’(剛)에 ‘괴팍할 퍅’(愎)이 합해진 말이다.
오늘 본문 속에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왜 하나님은 고기를 너희가 먹으라고 하시는 걸까?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받고 싶은 것은 제사가 아니다. 너희가 번제는 다 태워 내게 바치고 다른 제물은 너희가 먹는다고 하지만, 내가 허락할 터이니, 번제든 무슨 제사든 고기는 다 너희들이나 먹어라.” <새번역>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선언한다. 친교제에다가 번제를 보태어 바치고, 그 고기를 처먹어라.” <공동번역 개정판>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번제물을 희생 제물에 섞어 먹어치워라.” <성경>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메시지다. 그래, 계속 그렇게 하여라! 너희 번제물에다가 희생제물까지, 너희나 실컷 먹어라.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메시지>
‘먹으라’는 말을 공동번역에서는 ‘처먹어라’로 옮겼다. 의미의 흐름을 따라 ‘먹으라’는 말 앞에 ‘처’를 붙여 하나님의 심정을 전한다. ‘처먹으라’는 말은 ‘먹으라’는 말과 다르다. 글자로야 비슷해 보이지만 정서는 전혀 다르다. ‘처먹으라’는 거친 말 속에는 하나님의 불편한 심기가 담겨 있다.
번제는 희생제물을 모두 태워 바치는 제사다. 제물 모두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당신이 받으셔야 할 고기를 백성들에게 먹으라고, 그것도 처먹으라고 하시는 것일까?
백성들은 고기를 바치는 것으로 하나님께 해야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의무를 다 했다 생각하며 더 이상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런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그럴 바에는 고기는 너희가 먹어라, 너희가 처먹어라 하신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하지만 예배를 드렸다는 행위 자체가 곧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설교를 들었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얼마든지 마음을 딴 데 둘 수가 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얼마든지 말씀과는 상관없는 길을 갈 수가 있다. 그런데도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었으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너희가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로 내 목소리를 듣지 않고 제 멋대로 살다니, 차라리 그럴 거면 예배를 드리는 대신 등산이나 가라, 낚시나 해라, 여행을 가든지 골프를 쳐라…,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와 삶의 거리를 인정하지 않는, 좁힐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을 향하여 차라리 고기는 너희가 처먹어라 하신다.
처먹으라 하신 고기마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감지덕지 받아먹는다면, 그런 우리를 두고는 또 뭐라 하실지 아뜩해진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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