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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이제야 깨닫습니다

by 한종호 2015. 11. 4.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1)

 

이제야 깨닫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人生)의 길이 자기(自己)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指導)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 하니이다(예레미야 10:23).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중에는 때늦은 후회라는 것이 있지 싶다. 일러주긴 일러주되 뒤늦게 후회하면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우리 속담도 있고, ‘물고기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물이다라는 말도 있다.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산 물고기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물을 알게 된다는 말이 참으로 아릿하다. 필시 그것은 물고기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일 것이다.

 

오래 전 단강에서 만난 분 중에 안갑순 집사님이 있다. 머리에는 온통 서리가 내린 백발의 할머니였지만, 일찍부터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을 만큼 신여성의 삶을 살아왔던 분이다. 언젠가 집사님이 눈물로 들려주던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집사님이 담배를 배운 것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어린 나이 일곱 살 무렵부터였다. 배 안의 충()을 잡는다고 집안 어른들이 담배를 풀어 끓인 물을 마시게 한 것이 담배를 배우게 된 계기였다.

 

놀랍게도 집사님은 시집을 갈 때에도 몰래 담배를 챙겨갔다. 우연히 며느리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아버지는 꾸중 대신 아무도 몰래 담배를 사다 은근히 담배를 전해주었다. 시아버지가 바깥출입을 한 뒤 서랍을 보면 언제나 담배 몇 갑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당시엔 가장 좋은 담배들이 말이다.

 

그렇게 일찍부터 담배를 피워오던 집사님이 어느 날 기적처럼 담배를 끊었다. 하늘에서 환한 빛이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꿈을 이틀 연속으로 꾼 뒤 집사님은 스스로 교회를 찾아왔다. 빛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세례를 받던 날 담배를 끊었다. 끊으려고 작심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좋던 담배가 갑자기 역해졌다. 담배 연기를 맡는 것조차도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었다.

 

담배를 끊은 뒤 집사님이 눈물로 후회를 한 것은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어머니는 딸이 피우는 담배를 면전에서 바라보았다. 딸이 내뿜는 담배 연기를 덩달아 마신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그 때만 해도 딸은 몰랐던 것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 담배 냄새가 얼마나 역한 것인지를 말이다. 어머니는 그동안 싫단 말 한 번 안 하시고 그 견디기 힘든 순간을 참으며 보냈다는 것을 집사님은 담배를 끊고서야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도록 짐작조차 못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서야 딸은 뒤늦게 눈물로 후회를 하며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듯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중에는 그렇게 때늦은 후회라는 것이 있다. 결국 삶의 지혜란 때늦은 후회를 줄이는 것 아닐까 싶다. 뒤늦게 아무리 후회한다 하여도 결국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우리 삶엔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예레미야가 주님 앞에서 고백한다.

 

제가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제야 깨닫다니 그동안은 몰랐었다는 이야기인데, 예레미야가 그동안 몰랐다가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은 무엇일까?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개역개정>

 

주님,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새번역>

 

야훼께서도 아시다시피, 사람이 산다는 것이 제 마음대로 됩니까? 사람이 한 발짝인들 제 힘으로 내디딜 수 있습니까?” <공동번역 개정판>

 

주님, 저는 압니다. 사람은 제 길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간은 그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의 발걸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 <성경>

 

하나님, 저는 압니다. 죽을 인생들인 저희는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럴만한 능력이 저희에게 없다는 것을.” <메시지>

 

주님의 뜻을 몰랐을 때에는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원망도 하고 항의도 했지만, 주님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나니, 얼마나 한계가 뻔한 미약한 존재인지를 알고 나니 더는 할 말이 없어지고 만 것이다.

 

예레미야의 깨달음이 우리의 뒤늦은 깨달음이 아니기를. 이 땅의 교회들이 뒤늦게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 아니기를.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 내가 내 생명을 조종할 수 없다는 것, 한 발짝인들 내 힘으로 내디딜 수 없다는 것, 내가 내 길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 길을 걷는 이가 자기 길을 자기가 지도할 수 없다는 것, 그럴만한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후회하며 깨닫는 일이 부디 없기를.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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